▲ 울산왜성 본환 동문지 확돌.

울산왜성이 정유재란 당시 한·중·일 3국의 ‘도산성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진 역사적 장소였음이 성문과 유물 출토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중구청은 위험구간 정비를 위해 지난 5월 울산왜성 일부에 대해 울산발전연구원에 의뢰, 문화재 시·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중구청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울산왜성 정상부 부근 총 240㎡ 면적을 중심으로 본환(本丸, 왜성의 가장 핵심부분)의 동문과 성벽의 원형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진행됐다.

조사결과, 본환 동문지에는 2개의 문화층이 확인됐으며, 아래층은 정유재란 당시 축조된 성문의 문짝 받침 구멍돌(확돌)및 쇠 화살촉(철촉), 총통 탄환(철환)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 울산왜성 본환 동문지 출토유물(철촉, 철환).

발견 당시 구멍돌은 2개로 성문의 크기와 구조를 가늠할 수 있도록 동서로 나란히 놓여 있었다.

특히, 동쪽 구멍돌은 병영성의 최고 지휘관인 절도사의 선정비로 왜군이 울산왜성을 축조할 당시 울산읍성 뿐 아니라, 병영성의 성돌도 사용했음을 뒷받침 해주는 직접적인 증거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 동문지의 평면 구조는 안으로 꺾여 들어가는 ‘ㄱ’자 형태로, 성벽은 기초부를 튼튼하게 만든 우리나라 성곽과 달리 기반암을 다듬어 성돌을 쌓아올린 전형적인 일본식 성문의 모습을 띄고 있다. 

울산과학대 이철영 교수는 “전국적으로 왜성이 30여 곳이 있지만 울산왜성은 정유재란 당시 가장 큰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이번 유물 발굴로 성 축조에 병영성 성돌이 사용됐음을 확인했다”며, “단순히 왜성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려주는 유적지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텔링으로 역사의 산 교육장은 물론, 한국과 중국, 일본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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