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락 부장.취재2팀장

현대차지부가 19일부터 나흘 연속 파업을 한데 이어 오늘 또 다시 파업에 들어간다. 이번 파업은 현대중공업과 함께 장단을 맞추며 진행됐다. 한쪽은 그런대로 돌아가는 회사고, 또 다른 곳은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사연도 다르고 절박함도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라며 파업가를 외치고 있다. 숫자를 좋아하는 언론인지라 ‘23년만의 연대’라고 의미(?) 부여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면 속을 들여다보자. 현대차는 전년보다 크게 줄었지만 적자는 면하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천문학적인 적자를 연속으로 내며 기사회생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런 두 기업의 노조가 손발을 맞추겠다니 뭔가 좀 생뚱맞지 않은가. 짝을 맞추기엔 두 곳의 사정이 너무 차이가 난다. 둥근 구멍에 사각막대를 끼우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비록 세계경기가 침체돼 수요가 줄긴 했지만, 그래도 잘 만들어 열심히 판매하면 발전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게 자동차산업이다. 허나 수주 자체가 급감해 일을 하고 싶어도 일감을 확보할 수 없어 죽을 쑤는 조선업은 ‘필사즉생’의 각오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때는 한가족’이었다는 명분으로 연대파업을 했다. ‘연대’는 아름다운 단어다. 그러나 연대도 연대 나름이다. 두 노조가 손잡은 지금 같은 연대에 국민들도 연대해 줄까?

 ‘제5부’로 불리는 노동권력이 휘두르는 파업투쟁에 정작 더 죽어나는 곳은 따로 있다. 불볕더위가 쏟아지는 염천(炎天)에도 자식들 먹여살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다. 또 있다. 손님 비위를 맞추기 간·쓸개까지 빼놓고 서비스와 물품을 파는 중소상인과 그 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다. 화풀이를 한다며 호수에 던진 돌멩이에 죄 없는 개구리가 봉변을 당하는 꼴이다.

예부터 “먹기 좋은 음식도, 듣기 좋은 음악도 한두 번”이라고 했다. 긁힌 레코드판이 계속 같은 곡만 되풀이하면 아무리 좋아하는 노래도 싫증이 난다. 1년 단위로 돌아가는 대형 레코드판처럼 매년 반복되는 현대차의 ‘파업가’는 신물이 날만큼 들었다. 더욱이 남다른 대접을 받는 근로자들이 마치 ‘노조는 파업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듯 똑 같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한다. 

변함없는 이런 놀음에 시민들의 반응이 어떠한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면, ‘투쟁’이라는 글귀가 쓰인 조끼를 벗고 보통사람 복장으로 변복해 시민의 소리를 들어보길 권한다. 아마 상상 이상으로 반(反) 노조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것이다. 섬뜩한 얘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감았던 눈을 뜨고, 닫았던 귀를 조금만 열어보라. 

내년이면 6·29 선언 30주년이 된다. 그 당시 우후죽순으로 설립한 노동조합도 서른 살이 된다. 현대차지부도 해당될 것이다. 30년이면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 동안 숱한 교섭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대기업 노조는 주먹을 쥐고 ‘파업지상주의’를 외치고 있다. 이처럼 ‘대화’가 아닌 ‘물리력’을 선호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일종의 병(病)이다. 

특히 현대차노조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조합원을 두고 있다. 그 때문인지 이맘때가 되면 힘자랑을 하고파 안달이 난 것 같다. 병사 숫자만 믿고 고구려를 함부로 침략했던 수 양제와 당 태종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조합원 숫자에 도취해 시민이 외면하는 파업을 손쉽게 하는 노조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맞지 말라는 법이 없다.

파업, 파업, 파업…. 언제까지 불합리하고,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파업에 시달려야 하는가. 이 나라는 몇몇 대기업 노동자들을 위해 수많은 근로자와 시민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전국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으면서 ‘표준생계비’를 운운하며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열악한 근무환경과 박봉으로 살아가는 숱한 노동자들이 희생돼야 하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도대체 얼마나 더 파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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