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최초의 근대교육 요람인 배재학당 자리에 주한 러시아 대사관이 6동의 매머드 건물로 신축개관했다. 노태우 정권의 북방외교로 러시아가 근 100년 만에 한국 외교가에 진입한 셈이며 대한제국 당시 러시아공사관 자리에서 지척의 거리였다.

외세가 몰려온 1880년대의 유럽 열강 공관 건물들은 조선집 기둥 사이로 토벽을 헐고 벽돌로 쌓는 형태로 지어졌다. 영국할머니 탐험가 비숍 여사가 한양에 들렀던 1894년에, 영국 공사관 신축이 진행되던 언덕에 러시아 공사관만은 높이 솟아 있었다. 독립문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薩巴丁)이 1890년에 지은 르네상스식 러시아 공사관 정문은 파리 개선문처럼 세련된 모습이었다. 

고종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이 갈수록 심해지자 미·영·독·러 열강의 공관을 덕수궁 둘레에 불러들이고 덕수궁과 통하는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청·일과의 돌변상황이 발생하면 비밀통로를 통해 피란할 셈이었다. 고종황제는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당시 외부고문인 그레이트하우스를 상해에 보내 미국과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외인 위병 30명을 모집해 오기까지 했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 2월11일,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비밀통로를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이른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했다. 

비밀통로는 덕수궁 북서쪽 끝에서 러시아공사관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길이 약 110m, 폭 3~4m의 통로로 후일 미국공사관에서 제작한 정동지도에는 ‘왕의 길(King’s Road)’로 표시돼 있다.

문화재청은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조선의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이 ‘왕의 길’을 내년말까지 ‘고종의 길’로 복원키로 했다. 고종은 아관파천 직후 러시아공사관에서 약 1년 동안 국정을 수행했다. 이곳에서 친위 기병대 설치와 지방제도 등 관제 재정에 대한 안건을 발표하고 대한제국을 구상했다. 아픈 역사도 관광문화재가 될 수 있으며 후세에 자극제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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