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곤 부장·취재1팀장

현대차 노조의 장기파업이 결국 국가 차원에서 주목을 받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사태(事態)’라는 말을 써도 좋을 성 싶다. 비록 일개 노조와 기업의 일이지만,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우리 경제에 폐해만 입히니 그럴 것이다. 평소 듣기 힘든 ‘긴급조정권’이라는 말이 지난주부터 솔솔 새나오는 것을 보면 예삿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브레이크 없는 ‘탐욕의 질주’   
5월 17일 상견례를 가진 후 현대차 노사는 8월 24일 잠정안을 마련하고 26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했으나 부결됐다. “이만 하면 교섭위원들은 됐다고 봅니다. 다만 총회 절차가 있으니 조합원에게 재확인하겠습니다.…” 노조 대표가 잠정안에 서명할 때는 대략 이런 무언의 약속과 다짐이 담겨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부결이 되기 바쁘게 “여러분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라며 되레 조합원의 마음에 탐욕의 불길을 당겼다. 노사 교섭위원들이 그동안 기울인 노력을 일방적으로 무화(無化)시키며 책임을 회피하고자 ‘파업’의 볼륨만 올리며 자기 회사는 물론, 협력업체까지 골병들게 하는 이런 괴상한 논리가 어디 있나. 

사실 급여(돈)은 다다익선이다. 그러나 좀 품위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현재와 미래의 ‘지급능력’이 전제돼야 한다. 까짓것 한두 달 정도야 지금보다 두세 배 지급해도 어지간한 기업은 당장 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로또 당첨금식 급여지급을 하는 기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있을 수도 없다. 더욱이 ‘고용불안’과 ‘평생직장’을 입에 담고 있는 사람들 입에서 “무조건 전년보다 많게”, “경쟁사 보다 더 많게”라는 극도의 자기중심적 주장을 하며 제 먹거리까지 담보로 파업을 하는 것은 보면 돌렸던 고개가 돌아오지 않는다.

억지와 생떼는 이제 그만 
세상 일은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 선진국은 그런 부작용을 최소화시킨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권익은 ‘민주화’의 분기점이랄 수 있는 1987년 6월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진다. 현대차 노조도 그해 7월에 설립됐다. 노동조합 이름만 들었지 별다른 경험이 없었던 우리 산업계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87년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노동자의 권익은 대폭 향상되었다. 당연한 일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런데 우리 노조가 그동안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취한 여러 행동을 보면 억지와 생떼도 적지 않았다. 특히 현대차노조는 조합원 숫자와 자동차산업의 중요성 때문에 생떼에 상당한 재미와 혜택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제조업 최고수준의 복지에 고임금을 받고 있는 이면에는 그런 불합리와 부조리가 깔려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쉽게 말해 억지가 원칙을 이긴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시대가 바뀌었다.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도 남다르다. 적지 않은 조합원이 골프 취미생활을 하고, 주말이면 펜션으로, 장기연휴 땐 해외로, 1가구 2차량 가구도 상당수 있고, 게다가 심야근로도 사라지고…. 이만하면 직장생활을 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임금교섭에서 ‘생활비’를 거론하며 “더 더 더”를 외치는 것은 너무 염치가 없다. 본인들을 향한 원성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면 오늘 저녁 시장통 주점이나 식당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실 것을 권한다. 

억지가 이치·법·하늘 이길 수 없어 
비리법권천(非理法權天). 기원전 2세기 중국의 법가학파를 대표하는 사상가였던 한비자가 군왕에게 한 말이다. “비(억지)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는 법을 이길 수 없으며, 법은 권력을 이길 수 없고, 권력은 천(민심)을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법 위에 군림했을 정도로 막강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다니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게 진실이고 사실인 데야 누가 뭐랄 것인가.

노조에게 파업권이 있듯이 기업도 직장폐쇄나 휴업을 할 권한이 있다. 그리고 정부에게는 ‘긴급조정권’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가진 권한과 권력은 함부로 남용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상황이 불가피하면 어쩔 수 없다. 긴급조정권은 노사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되는 정부의 물리적 개입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게 무서운 것이라도 ‘원칙(原則)’을 포기하면서까지 억지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굳이 선현들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누구나 긍정할 진리다. 자동차산업이 아무리 중요해도 억지가 이치나 법, 그리고 하늘을 이기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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