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공기·태화강 악취로 각인됐던 울산, 환경생태도시 탈바꿈 충격
산업·기업 매개로 컨벤션·비즈니스 관광자원 잠재력 충분

1970∼80년대 조성 중구 원도심, 산업화시대 이야기 품은 영화세트장
도시 이미지·멋 대변…모텔·유흥업소 우후죽순 진부한 시가지 우려

외곽 공영주차장 효율성 극대화·주차료 인하로 전면 보행자화 바람직
방치된 폐가 묶어 신개념 공유공간·놀이터 조성 전국 명물로 만들어야

지난 6월 울산 중구재생 총괄코디네이터로 초빙된 최이규 박사가 특별기고문을 보내왔다. 국내외의 도시디자인에 풍부한 경험을 지닌 최 박사는 중구 구도심 부활 프로그램에 착수한 뒤 현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구도심의 가치와 비전에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전개될 밑그림을 보여준다. 이 그림을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객관적 변모상-“안에 사는 사람은 모른다”

1994년 어느 겨울날이었던 듯 싶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필자는 방학을 맞아 부산에 가는 길에, 친구의 엉뚱한 제안에 이끌려 ‘울대’ 앞에서 원정소개팅이란 걸 하게 됐다. 삐삐 차고, 티코 몰고, 당당히 울산에 입성한 우리는 공장 뒤켠의 한산한 배후지 정도일 줄 알았던 도시의 넓은 도로와 많은 차선에 당황해 공업탑로터리를 빙글빙글 돌며 진땀을 뺐다. 미인이었던 여학생 덕분에 길을 헤맨 노고쯤은 충분히 보상이 되었으나, 당시 차창 틈으로 새어 들어오던 울산의 매캐한 공기와 태화강의 악취는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그래서 울산에 새 직장을 구한 친구가 서울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간다고 했을 때, 뭐 그렇게까지 할 거냐고 핀잔을 주긴 했지만, 내심 이해가 되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자질구레한 과거사를 꺼내든 이유는, 최근에 다시 찾은 울산에서 느낀 감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울산은 어느덧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변모해 있었다. 태화강은 맑아지고, 대숲을 따라난 산책길은 삶의 질을 표방하는 외국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상식적으로 볼 때 어불성설이었던 ‘환경도시 울산’이라는 표현이 직접 와서 보니 현실이 되어 있었다. 부모가 자기 아이 크는 것을 잘 모르듯, 울산에 계속 사신 분들에겐 서서히 이루어진 변화가 체감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이가 받는 충격은 크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시민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그런데 필자는 여기서 더욱 큰 목표를 다시 한 번 제시하려 한다. 환경적으로 살만해진 도시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세계 경제의 흐름과 동아시아 상황에 부응하는 청정도시를 향해 가보자는 주장이다.
 

중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2014년 2차 도시관광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35억원을 들여 ‘원도심 예술화 구경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사진은 중구 원도심. 울산매일 포토뱅크

◆위기와 기회-“옛 것 즐기고 새 것 만든다”

잠시 시야를 좁혀 등잔 밑을 보자. 지금 중구 원도심에는 새로운 모텔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7~8만원을 호가하는 객실인데도 빈 방이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이런 추세라면 노후 건물 상당수가 매끈한 숙박업소로 바뀔 것이고, 수도권 여느 위성도시의 역세권 마냥 중층 모텔과 유흥업소가 주를 이루는 진부한 시가지로 변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는 나만 느끼는 위기감이 아님을 확인했기에 절박함은 더한다.

모텔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흉물로 방치된 건물로 채워진 음습한 골목에 비하면 긍정적인 변화다. 허나 안타까운 것은, 세계 어느 도시를 가든 올드타운, 즉 원도심은 그 도시의 이미지와 멋을 대변한다는 사실이다. 각각의 경제주체가 선택한 최선의 결과가 그저 그런 모습의 도시라면 이는 비단 중구의 문제가 아닌, 울산의 치욕이다. 숙박업소의 허가를 어렵게 해야 한다든가, 개별 경제주체의 선택에 억지스럽게 개입하자는 말이 아니다. 시장의 원리에 의한 수요는 분명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것대로 두고, 공적 영역과 시민사회가 할 수 있는 공동체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도 시급히.

나는 원도심이 좋다. 쌩쌩한 아이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오뎅을 먹는 사소한 재미 외에도, 이 곳에는 걸어서 5~10분 거리에 작은 건물들이 엄청난 밀도로 집적되어 있다. 원도심의 다양성과 편리함은 역사가 만들어낸 도시형태, 즉 어반폼에 기인한다. 어느 나라를 가든, 새로 지은 주거단지와 업무지구를 보러 다니는 관광객은 없다. 마천루가 들어서면서 유명해진 상하이의 푸동지구를 바라보는 번드(Bund)는 정작 강 건너편 구도심에 있다. 그곳을 가득 메운 인파 또한 빽빽한 구도심에서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하고 공연을 본다. 좁은 길과 작은 건물들이 빚어내는 느리고 불편한 속도야 말로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상하이는 이에 응답해 인민광장과 황푸강변을 잇는 핵심 도로인 남경대로를 전면 보행자화 하고 곳곳에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인을 갖춘 녹지를 전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그 에너지를 수용하였다. 도시의 격과 품위는 이러한 오픈 스페이스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먹고 쓰기 위한 도시는 널렸다. 단지 소용되는 물품을 구매하고 허기를 면하기 위해 필요한 일상적 과정을 수행하는 도시는 이용자에게 아무런 자부심도 주지 못한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멋있어 보이는 도시,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공유공간의 가치를 느끼는 경험이 수반되는 도시가 명품 도시다. 세계적으로, 새로운 고급 소비층과 혁신적 생산자들은 이러한 도시로 모이고 있다. 구글이 넓디넓은 신 개발지를 마다하고, 땅값이 천정부지인 좁고 낡은 미트팩킹 지구에 뉴욕지사를 위치시킨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위상과 가치-“울산맛 내는 결정적 양념이다”

요즘 제주도가 동북아 관광의 중심지로 급부상했지만, 실상 우리 국토 전체가 동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관광의 핵이 될 수 있는 여건에 놓여있다. 중국의 심각한 환경오염, 일본의 방사능 공포와 높은 물가, 아직 인프라가 미비한 동남아시아 각국을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만큼 사계절 즐길 수 있는 자연과 안전한 사회적 분위기가 갖추어진 곳이 없다.

친분이 있는 말레이시아 건축가는 거의 매년 한국에 와서 스키를 타고, 한류스타 모임에 참석한다. 골프, 등산, 캠핑, 먹거리, 해양스포츠, 전시, 쇼핑, 컨벤션 등 굳이 한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놀거리, 볼거리가 종합적으로 갖추어진 국가는 우리뿐이다. 비교적 깨끗한 환경과 정비된 도시, 선진적 교통 체계와 통신망, 밤늦도록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치안을 갖춘 사회는 막상 찾아보면 흔치 않은 것이다.

알고 보면 레저와 스포츠, 비즈니스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막상 가 본 도시가 패션 브랜드인 자라.유니클로 같은 어딜 가나 보는 상점들로 채워져 있다면 도저히 매력을 느낄 수가 없다. 사람들이 보고 즐기길 원하는 것은 비록 일시적인 코스프레라 할지라도 지역인 들의 삶이 배어있는 방식과 행동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백 년을 너끈하게 쓸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울산은 산업과 기업을 매개로 한 컨벤션과 비즈니스 관광자원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중구 원도심은 사뭇 밋밋해져 버릴 수 있는 울산이라는 음식에 풍미를 담아내는 결정적 소스다. 지금은 무분별한 간판에 가려져 있지만, 원도심의 3층짜리 건물들은 약간의 때만 벗겨내도 그 자체로 산업화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영화세트장이다. 여타 도시와 달리 70~80년대에 일시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러한 통일성이 생성된 것이다. 하지만 체계적인 보존과 재사용 없이 간다면 조만간 모두 없어질 것이고 우리는 소중한 자원을 영영 잃게 된다.

태화강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보존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교통인프라와 적극적 이용의 견지에서 친환경적으로 개발하지 않는다면 울산이 치러야 할 기회비용은 크다. 선바위에서 억새군락지까지, 아니 반구대, 울산역에서 장생포까지 일관하는 큰 시야를 가지고 원도심 등 인근 수변 지역과 연동되는 계획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갤러리, 카페가 밀집해 있는 중구문화의거리. 인근에는 2020년 시립미술관이 들어선다. 울산매일 포토뱅크

◆과제와 비전-“명품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현대 유산의 존재, 맑아진 태화강, 그리고 무엇보다 걷는 사람에게 적당한 스케일은 원도심이 가야 할 방향성을 너무도 선명히 제시해 준다. 우리가 이미 가진 경쟁력, 즉 환경과 치안을 백 번 이용하고 더욱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자. 여기에 보행자에게 편리한 기반시설을 시급히 갖추어나가야 한다. 원도심의 건물을 허물고 도로를 확장시키면 고질적인 교통 정체와 주차난이 해소될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쇼핑가로 성공하고 있는 해외의 선진 사례들을 보고 배워야 한다. 원도심 외곽 거점 공영주차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획기적으로 주차료를 낮추는 동시에, 도심 내부는 무공해, 무소음의 수소연료 차량을 무상으로 운영하면서 관광자원화 한다면 어떨까?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보행자화를 통해, 시민들로 하여금 걷는 사람의 영역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모자란 주차공간을 차지하려고 길 위에서 허비하는 모두의 시간을 크게 줄일 것이다. 그것이 곧 도시경쟁력이고, 기업 활동을 돕는 도시다.

품격 있는 도시를 만드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방치된 폐가들을 묶어 도심 이미지를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비움의 장소를 만들자. 기존의 뻔하디 뻔한 공원과 광장의 개념을 탈피하여, 전국적으로 명물이 될 수 있는 수준의 공간과 놀이터를 조성하자. 지진 등 재해가 닥쳤을 때 빠르게 대피하고, 유사시 피해주민들의 임시거주공간으로 사용하자.

요즘은 인프라 개념을 도입해 공원 하부에 저수지를 설치하기도 한다.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않겠지만, 국지적으로 홍수를 완화할 수 있는 기능은 가능하다. 아울러, 오픈스페이스와 함께 예술인들과 젊은이들이 정주할 수 있는 공적 건물, 쉐어하우스, 아티스트주택, 쉐어오피스 등을 확보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울산과 원도심의 문화를 새롭게 쓰도록 해야 한다.

악취가 나는 더러운 골목이 아니라, 유모차를 끄는 엄마와 손을 잡은 연인들이 마음 놓고 쾌적하게 걷고 쉴 수 있는 여유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쓰레기통을 설치하되, 독일 등 환경선진국들의 앞선 디자인을 참고해 재활용품 수거로 생활하시는 노인들이 손쉽게 공병과 종이를 모으실 수 있도록 돕자. 공공화장실, 특히 여성화장실은 지금처럼 불쾌한 장소가 아니라 널찍하고 안락하고 따뜻하게 도보 반경 200미터마다 설치하고, 상인회의 협조를 얻어 민간 전문기업을 통해 유지관리하자. 십 년, 이 십 년 후 혁신도시와 재개발이 완료되었을 때, 중구 원도심이 비단 외지 관광객 뿐 아니라 울산 시민 누구에게나 소중한 청정의 녹색 보석이 될 수 있음은 그저 허황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최이규 계명대 교수(중구재생 총괄코디네이터)

최이규 계명대 교수
(울산 중구 재생 총괄코디네이터)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교수. 국토교통부 울산중구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 미국 공인도시계획사(AICP), 친환경인증전문가(LEED AP).
뉴욕에서 10여 년간 실무와 실험적 작업을 병행하며 북미와 유럽의 도시 설계공모전에서 수차례 수상했다. 대표 저서로 「시티오브뉴욕」(삼성언론재단총서)이 있으며, 영국 파이돈이 발간한 세계 조경가 60인 작품집에 선정됐다. unknp.com의 공동창업자로서 뉴욕시립미술관, 센트럴파크 아스널 및 소호, 두바이, 올랜도, 런던, 위니펙, 대구 등에서 개인전 및 공동전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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