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섭 UNIST 경영학부 초빙교수

동북아오일허브사업이 국정과제로 선정돼 추진해 온지도 7년이 지나가고 있다.  1단계 사업인 여수 오일허브사업을 추진해 저장탱크 가동률이 100%에 육박하는 가동실적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울산 북항사업 추진을 위한 국제 합작투자회사의 설립, 기본 설계 및 공사 발주준비, 남항사업 추진 계획 수립과 더불어 각 부처별로 규제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석유트레이딩 업역 신설 등을 위한 석대법을 개정하기 위해 입법 추진 중에 있다. 지방정부는 오일 허브사업의 해외 홍보 및 투자자 유치등 적극 홍보에 나서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도 2012년 국내 최초로 석사과정인 ‘석유트레이딩.금융공학과정(ECTFE)’을 개설해 고급 전문인력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가시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의 체감속도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우선, 범정부적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데서  찾아 봐야 할 것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본 바와 같이 범정부적 컨트롤 타워가 가동되기 전과 후는 극명하게 달랐다. 각 정부부처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조직이 없이 이해관계가 상충되고 법적인 충돌도 있을 수 있는 현안을 해결해 나가기란 쉽지 않다. 각 부처에 맡겨 놓으면 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각 부처를 통합할 수 있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컨트롤 타워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하나는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의지나 동력이 약화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정권에 관계없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갈 수 있는 사명감과 전문가가 필요하다.

기초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오일허브사업의 성공요소(Key success factors)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테마이다. 각자의 전문분야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는 2000년 석유공사 직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창출해낸 원래의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모델’과는 괴리가 있어서 몇 가지 요소(지면관계상 상술할 수는 없고 이미  알려진 요소도 제외)를 살펴 보고자 한다. 

첫째, 트레이딩 생태계 큰 그림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수십 억원을 들여서 20번이 넘는 연구·용역을 실시했는데 불행하게도 연구자들이 석유 산업 및 석유 트레이딩 생태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전문적 지식이 없는 비전문가들에 의해 부분적으로 작성됐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많은 보고서들이 현재 어느 정도 효용가치가 있는지 점검해 보면 알 수 있다. 연구는 주로 장님 코끼리 만지듯 부분적으로 됐고 내용은 주로 무엇을 할 것인지(What-to-do), 오일허브사업이 성공했을 경우의 과실에 대해서만 온통 장미빛으로 채색했을 뿐 전략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How-to-do)에 대한 기술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석유트레이딩 생태계 전반에 대해 무지한 채 작성된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써야 한다. 석유·가스 산업 및 석유트레이딩에 대해 전문적인 실무지식을 갖춘 전문가, 석유거래소 설립에 참여, 경험이 풍부한 외국전문가와 함께 동북아 석유트레이딩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전체 그림이 나와야 비로소 하위 섹터가 정의되고 그에 따라 시간적 완급을 결정하면서 사업전체의 로드맵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 

둘째, 트레이딩 커뮤니티(Creating trading Community)를 조성해야 한다.

석유물류 인프라 구축은 가장 쉬운 일이다. 돈만 투입하면 얼마든지 저장시설 등 물류시설을 건설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도 미래에 거래될 만한 상품(future tradable commodities)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예측에 기반한 탱크결정(Conceptual design and tank configuration)이 담보돼야 한다. 

물론 트레이딩 커뮤니티 구축이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기에 트레이딩에 관련되는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고 규합해 공동체로 묶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제업자, 수입업자, 트레이더, 탱크터미널 업체, 관세청, 항만청등 사이에서 투명성, 효율성 등이 보장되는 석유거래가 시작될 수 있도록 석유거래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셋째, 우선 석유장외시장(OTC market)부터 조성하자. 

혹자는 싱가포르 오일허브를 세계 3대 허브라 하지만 석유선물거래소가 없는 싱가포르는 반쯤 성공한 미완성 오일허브 일뿐 진정한 오일허브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싱가포르는 장외시장에서 현물거래 뿐만 아니라, 선도거래,옵션거래, 스왑거래등 파생상품거래가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향할 방향은 우수한 지리적 이점과 물류인프라 경쟁력등을 바탕으로 장외시장에서 거래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특히, 장기거래(선도,스왑등)를 활성화 할 수있는정책과시장조성에역량을집중해야한다. 두바이상업거래소(DME, Dubai Mercantile Exchange)가 장기거래시장없이 실물거래위주의 불과 2~3개월후 단기 거래에 치중하고 있어 성장의 한계를 보이는 점은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넷째, 국내 토종 트레이딩업체 육성도 중요하다. 

해외 유수한 석유트레이딩 업체를 국내로 유치하는 방안과 병행해 국내 트레이딩 업체를 신규로 육성해내는 정책 또한 긴요하다. 네델란드의 로테르담에 가보니 아주 작은 트레이딩회사인데 트레이더 1명, 트레이딩관련 Operator 3명, 행정담당 1명, 재무담당 1명, 도합 5명이 운영하는데 2015년 년간 매출액 규모가 약 5억 유로에 이른다.

물론 국내 트레이더를 신규로 많이 육성하기 위해서는 트레이딩 생태계 조성이 선행돼야 하고 트레이딩에 참여해서 얼마든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끝으로, 오일허브 사업은 백년대계의 장기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미국 걸프지역 오일허브도 20세기초 텍사스에서 신규 유전이 발견되면서 태동하기 시작했고 유럽의 ARA 허브도  20세기 미국으로부터 석유제품을 수입해서 유럽 내륙연안국으로 재분배하는 기능부터 시작된 것이며 싱가포르 또한 1960년대 중반부터 국책사업으로 추진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오일허브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단기 성과에 급급하는 민간 CEO적 관점보다는 모두가 “노!” 할 때 혼자서 “예스!”할 수 있는 창조적 기업가 정신의 소유자, 통념을 뒤집고 돌파하는 창조적 인력이 필요하다.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아직도 할 일이 많고 분위기도 역동적이지 못하지만 눈앞의 성과를 보지 말고 국가 백년대계적 관점에서 또한 다음 세대의 먹거리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인내를 가지고 추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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