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모래 해변·얕은 산 두루 갖춘 거대한 예술품
천연기념물·희귀 조류·생물 서식…한국의 갈라파고스

 

굴업도 전경 항공 사진 [인천시 옹진군 제공=연합뉴스]

인천의 작은 섬 굴업도는 등을 구부린 사람이 엎드린 채 땅을 파는 형상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조선 시대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는 오리가 물 위에 구부리고 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구을압도'(仇乙鴨島)로 기록되기도 했다.

굴업도는 인천에서 배로 한 시간가량 가야 하는 덕적도의 서남쪽에 달린 작은 섬이다. 덕적도에서 다시 한 번 여객선을 갈아타고 17㎞의 뱃길을 1시간 넘게 가야 도착할 수 있다. 8천~9천만년 전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섬으로 알려졌다.

1천900년대 굴업도에서는 민어 파시(波市)가 열렸다. 면적 1.71㎢, 해안선 길이 12㎞의 작은 섬에 500명의 어민이 터를 잡고 살았던 이유다. 어선 수백 척이 굴업도 인근에서 조업할 정도로 당시에는 좋은 어장을 갖췄다.

이후 어장의 중심이 인근 덕적도로 옮겨가면서 어민들도 하나둘 섬을 떠났고 지금은 주민 10여명이 민박업을 하며 섬을 지키고 있다.

굴업도 주민들이 민박을 주로 하는 이유는 배낭을 메고 캠핑을 오는 이른바 '백패커'들이 많기 때문이다.

백패커들에게 굴업도는 꼭 한 번쯤 가봐야 할 성지(聖地)로 꼽힌다. 오랜 침식 작용으로 생긴 기암괴석, 아름다운 모래 해변, 얕은 산을 두루 갖춰 캠핑을 즐기기에 이만한 곳이 또 없다.

굴업도 해변 [인천시 옹진군 제공=연합뉴스]

섬이 작아 특별한 대중교통 수단도 없다. 음료수와 생필품 등을 함께 팔며 섬에서 '24시간 편의점' 역할을 하는 민박집의 용달차를 빌려 타고 섬 곳곳을 둘러볼 수 있다.

굴업도 북쪽에 있는 연평산(해발 128m)에 먼저 오르면 아래로 코끼리 바위와 목기미 해변이 눈 앞에 펼쳐진다.

오랜 기간 해풍과 파도로 만들어진 이 바위는 실제 코끼리가 화석이 된 것처럼 장엄한 형체로 서 있다.

굴업도 해변 [인천시 옹진군 제공=연합뉴스]

좁은 목기미 해변을 사이에 두고 푸른 파스텔톤의 서해가 양쪽으로 갈라져 펼쳐진 모습은 눈에만 담아 두기에는 아까운 풍광이다.

연평산 소나무숲에 텐트를 치고 버너에 라면을 끓여 놓고서 지는 석양을 보면 지상 천국이 따로 없다.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해안 지형의 백미'라 불리며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토끼섬은 굴업도 남쪽에 또 달린 작은 섬이다. '소굴업도'로도 불리며 썰물 때에만 들어가 볼 수 있다.

물이 들어오면 길이 없고 물이 나가면 길이 생기는 곳이다. 한때 주민들이 토끼를 풀어놓고 키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굴업도 서남쪽 개머리언덕에서는 운이 좋으면 사슴떼를 볼 수도 있다. 오래전 소 떼를 방목하던 목장이 있던 곳이다. 가을이면 억새가 어른 키 높이로 자라 숲을 이룰 정도로 우거진다. 이 개머리언덕도 백패커들이 주로 짐을 푸는 야영장소로 손꼽힌다.

굴업도 얼굴바위 [인천시 옹진군 제공=연합뉴스]

풍광이 수려한 굴업도는 1994년 정부가 핵폐기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논란의 한 가운데에 섰다.

결국 정부는 굴업도에 활성단층이 발견됐다며 지정고시를 해제하고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철회했다.

이 섬이 다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것은 12년 뒤다.

CJ그룹 계열사가 2006년부터 골프장을 포함한 대규모 관광단지를 굴업도에 조성하겠다고 나섰다가 환경단체 등 지역 시민단체의 오랜 반대 끝에 2년 전 골프장 건설 계획을 거뒀다.

대기업이 관광단지를 조성하려고 계획할 정도로 때 묻지 않은 굴업도. 천연기념물뿐 아니라 희귀 조류와 희귀 생물이 서식해 '한국의 갈라파고스'로도 불리는 섬.

꼭 백패커가 아니더라도 자연이 빚은 거대한 예술품을 보고 싶다면 한 번쯤 가볼 가치가 있는 섬이다.

굴업도 지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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