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관광 콘텐츠가 있다. 바로 ‘고래'다. 남구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는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에서는 한없이 내어주었던 바다의 풍요로움, 그 자연을 딛고 성공한 산업화, 그리고 그 이면의 그늘까지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옛 장생포 마을을 재현한 고래문화마을.

◆ 풍요의 바다, 고래잡이 마을

부자도시 울산. 공업단지의 수많은 공장이 밀집한 울산에 붙여진 명성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산업화가 사직되기 전에도 손에 꼽히는 부자동네가 있었다.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풍요로움을 뽐냈던 남구 장생포다.

지역의 대표적인 어촌인 장생포 사람들은 ‘고래잡이'로 먹고 살았다. 장생포 마을 사람들은 고래를 잡고, 뭍으로 끌어올린 고래를 해체하고, 기름을 짜내고, 고깃덩이를 장터에 내다파는 일들로 생계를 꾸렸다. 고래는 말 그대로 마을 사람들의 ‘삶'이었다. 거대한 고래 등에 올라타 해체작업을 벌이면 온 동네 사람들 모여 구경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이는 1986년 상업 포경이 금지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사라진 포경 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 고래문화특구의 ‘장생포 옛마을'이다. 이곳에는 고래와 함께한 장생포 주민들의 삶을 다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세트장이다.

넉넉했던 그 옛날을 그리워하는듯 늠름하게 생긴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있는 동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 뒤로 집들이 모여 있고, 초등학교도 자리하고 있다. 작은 의자에 걸터앉으면 무릎보다 낮아진 책상을 보며 훌쩍 커버린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발소와 여인숙, 다방…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간판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교복도 빌려입을 수 있는데, 덕분에 장생포 옛마을은 ‘사진찍기 좋은' 추억의 장소로 입소문이 나 있다.

세트장처럼 꾸며둔 옛마을에서 나오면 산책로가 펼쳐진다.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에서부터 이어진 고래, 동화 속에서 꿈의 대상이었던 고래이 곳곳에 분위기를 더한다. 특 트인 광장에서는 울산대교와 어우러진 장생포 앞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 산업화의 그늘, 추억 속 기억들

‘고래'라는 테마를 가진 장생포의 관광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현대적 시설인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 공원화한 고래문화마을과 그 속의 거대한 세트장인 장생포 옛마을….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여전히 이곳은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울산공업센터가 조성됐다. 수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날마다 굴뚝에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공장들에 둘러싸여서도 포경으로 장생포는 부유했다. 하지만 상업 포경이 금지되면서 점점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환경 보호'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전이었다. 해안가에는 검은 뻘이 밀려들었고, 악취는 심각했다.여름이면 동네는 모기떼들과 전쟁을 치렀다. 그 당시 참다 못한 주민들이 동네에서 잡은 모기 한봉지씩 손에 들고 동사무소를 찾아 항의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장생포는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도, 더이상 돈을 벌 수도 없는 동네였다.

그 마을을 다시 살려보겠다고 시작한 것이 1995년 9월 19일 ‘고래대축제'다. 그 후로 20여년, 장생포는 명실상부한 고래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장생포의 관광 콘텐츠는 단순히 관광 인프라를 세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생포 복지문화센터 옆길을 따라 들어서면 마을 곳곳이 새단장을 끝냈다. 낡은 담벼락마다 고래가 그러졌다. ‘고래 꿈의 길', ‘장생포 이야기길', ‘추억의 골목길'이라는 테마도 붙었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았던 오솔길과 온 동네를 한눈에 바라봤던 언덕은 산책로와 전망대로 바뀌었다.

장생포는 주민들의 기억들을 되짚어 과거의 모습을 정비하고 있다. 이는 5D영상관, 모노레일, 울산함 전시시설 등 고래문화마을 일대에 조성됐거나 추진 중인 인프라들과 어우러져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고래' 관광지를 꿈꾼다.

 

신화마을에 그려진 미술벽화.

◆ 시간이 멈춘 마을, 벽화를 입다

고래문화특구 입구에 위치한 신화마을도 인기를 끌고 있는 관광지 중 하나다.

이곳은 1960년대 공업단지에 내몰려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만든 이주민촌이다. ‘신화(新和)'라는 이름에서도 새롭게 화합해 잘살고자 하는 주민들의 마음이 전해지는듯 하다. 전형적인 1960년대, 1970년대 집들이 늘어서있다. 마당도 없이 방문이 골목길 옆으로 줄지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은 마을에 터를 잡고 사는 이들보다 공단에 출퇴근하며 돈을 벌고자 하는 이들이 눈만 붙이는 공간이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이곳의 슬럼화는 눈에 띄게 심각해졌다.

이곳이 달라진 것은 2010년 마을 미술프로젝트였다. 낡은 벽돌 담벼락에 그려넣은 그림은 조금씩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영화 ‘고래를 찾는 자전거'를 촬영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각종 명화부터 시화, 개구진 그림들까지 만나볼 수 있는 신화마을에는 ‘지붕없는 미술관'이란 애칭이 다시 붙었다.

마을의 중심 골목을 따라 양 옆으로 가지처럼 뻗은 골목마다 각각 콘셉트가 정해져있다. 골목은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고, 가파른 계단부터 좁은 골목, 밭두렁을 따라 이어지는 골목까지 다양한 길을 걸으면서 그에 걸맞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단, 이곳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인 만큼 소란은 금물. 날이 좋은 날이면 마을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농작물을 펼쳐놓고 하는 소일거리는 벽화를 배경으로 눈에 담기 충분한 정겨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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