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정의당 울산시당 위원장

2017년 정유년 새해 첫날부터 우리는 서둘러 희망을 말한다. 

역설적으로 2016년 병신년, 절망에, 절망을, 절망으로 퇴색된 우리를 보았다. 

더 이상 절망에 허덕이는 우리가 짜증나고 무기력해서 급하게 희망을 찾는다. 

희망이 어디 있나?

두 눈을 부릅뜨고 희망이 있을 곳을 찾아본다. 우리들의 눈에, 가슴에, 두 팔에, 아니면 더 푸르고 높은 하늘 한 가운데에서.

그리스가 낳은 거장 테오도로스 앙겔로플로스 감독이 1988년 만든 영화, ‘안개속의 풍경’이 떠오른다.

아버지를 찾아 나선 어린 두 남매의 ‘절망’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우울한 영화다.

희망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난감하다. 병신년에 메말라 버린 힘과 용기를 찾기 위해 정유년 희망을 말하려는데 서두부터 초점이 흐려진다. 

간신히 희망이라는 글자를 떠올려 머릿속에 그려보는데 뜬금없이 희망의 본질이라니. 
영화는 말한다. 희망의 본질은 절망이라고.

일반적으로 희망은 따뜻하고 바라는 것이 이뤄진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희망은 이뤄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바라는 것이 전혀 아니다. 

희망의 반대가 절망? 반대와 반대가 아닌 절망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희망이다.

이 영화에서 남매는 계속 절망적이다. 여행 중에 강간을 당하고 여행 중에 사랑에 빠진 남자는 동성애자였다. 외삼촌을 찾아가지만 너희 아버지는 여기에 없다는 등 엄마가 다 속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처절한 절망이 남매를 감싼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남매가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망을 만나고 또 만나도 이 아이들은 여행을 계속한다.

여기서 희망의 본질을 본다. 희망은 대상적인 것을 성취시켜주는 것, 욕망이나 소원이 아닌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존재에의 힘’이라는 사실을.

이 남매의 여정을 ‘희망여정’이라고 표현하면 희망여정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길이다.

그래서 다시 희망을 말한다. 희망은 성취와 욕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껏 욕망과 성취에 휩싸여 절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절망 속에서 갖는 진정한 희망은 반대급부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에 힘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계산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욕망이나 소원이다.

희망은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며, 바랄 수 없음에도 바라는 것이 바로 희망이다. 
희망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존재의 힘’을 준다는 역설적인 한마디로 우리의 삶과 영혼은 도약한다. 

희망은 언제나 인내를 내포하고 희망하는 영혼은 인내하는 영혼이다. 절망에서 자유스러워지는 것이 희망여정이다. 

한 시인의 말을 다시 되새긴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을 잃은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정유년 희망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희망이 늦을 수는 있지만 없을 수는 없다. 희망은 정직한 절망 후에 느리게 다가온다. 
정직한 절망만이 간절한 희망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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