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점
울산여성회 부설 
북구가정폭력상담소 소장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 연휴가 보름이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매년 잊지 않고 그 멀고도 고생스러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것은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과 지인들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덕담과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바람이 서로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힘이 돼준다면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설레고 반가운 명절의 만남이 어느 순간 부담스럽고 기피하는 날이 된 것 같다. 관심과 염려를 담은 안부들이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며 대답하기 곤란한 사적인 질문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꼽은 명절 때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를 살펴보면, “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애인은 있냐?”, “취직은 했니? 어디 다니니? 연봉은 얼마냐?”, “이번에 대학은 어디 갔어? 공부 잘하니?”, “살 좀 빼라(찌워라)”,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 몇 명이나 낳을 거냐?” 등등..

물론 번듯한 직장에, 남들이 선호하는 대학에,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자녀를 두었거나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몇몇의 가정을 제쳐두면 위에서 물어보는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관심과 애정을 빙자한 질문들 속에 끊임 없이 비교당하는 이름도 모를 ‘엄친아’와 ‘엄친딸’, ‘옆집 남편과 아내’들. 그로 인한 자존감 상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이들에겐 대인관계 기피의 문제까지 불러 올 수도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이해 하지 못하는 우리 문화중 하나가 개인 간 경계를 넘어서는 밀착된 사적인 관계라고 한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정(情)’으로 표현되는 서로간의 마음 씀씀이가, 부정적으론 간섭과 참견이라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문제행동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질문하는 사람들의 원래 의도는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만들어낸 오지랖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상위 1%의 누군가는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 자신의 능력으로는 꿈도 못 꿀 명문대를 쉽게 들어가고, 대기업의 후계자가 되며, 부모의 이름으로 얻게 되는 자리를 마치 자신이 이뤄낸 업적인양 세상을 자신의 발아래에 두고 오만하게 내려다보면서 금수저가 되고 싶은 흙수저들의 안타까운 고군분투를 한낱 조롱거리로 삼아 비웃는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 보다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가족들의 행복을 챙기느라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무수한 국민들이 왜, 자신이 느끼는 행복지수에서는 매년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이미 바닥 저 밑으로 가라 앉아 버린지 오래다. 물론 행복지수는 조사하는 기관이나 조사하는 기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주관적인 국민들의 행복지수에서 세계 최고의 빈국인 부탄은 국민들의 90% 이상이 자신은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있다. 어떤 이유로 그들은 객관적인 상황이 우리들 보다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까? 예전의 부모세대보다 모든 것이 풍족한 현재 세대가 왜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 

행복지수 세계 1위인 덴마크가 행복한 이유는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는 점을 꼽는다고 한다. 개인간의 신뢰도는 78%이고 국가에 대한 신뢰도는 84%라고 하니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 보면 비현실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 뒤를 잇는 행복의 이유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며 마지막으로 공동체 의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공동체를 위해 세금을 많이 내는 것도 기꺼이 생각한다니 이래저래 부러울 수 밖에 없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도 행복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성공만을 행복의 척도로 삼는 한 우린 끝 없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에게 상처주고 상처받는 일들이 반복 될 것이며, 그로 인한 사회공동체 회복은 요원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보다 능력 없다고, 가난 하다고, 배우지 못했다고, 나이가 어리거나 많다고, 외모가 좋지 못하다고 경제적, 성별, 학력, 지역, 인종, 연령, 성적지향, 장애, 이념등의 여타 말 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를 가져다 대며 서로를 비난하고 상처 줄 것이 아니라 혼란스럽고 어려운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동료로서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지금 이 순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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