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봉란
울산경제진흥원 창업일자리팀장

미국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파워그룹을 꼽으라면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다. 1998년 설립된 온라인결제 서비스업체 페이팔의 창업멤버들을 지칭하는데, 페이팔이 2002년 이베이에 15억달러에 매각되어 모두 돈방석에 앉게 된 이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직접 창업하거나 창업기업에 투자를 해 잇달아 놀라운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고 있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그룹으로 평가 받고 있다. 공동 CEO인 피터 씨엘은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 캐피털의 파트너이며,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앨런 머스크도 글로벌 전기자동차 생산업체인 테슬라 모터스의 창립자이다. 유튜브를 만든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 링크드인 창업자 레이드 호프먼 등도 이 그룹의 멤버들이다. 이들은 끈끈한 유대감을 지니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실리콘밸리의 상징적인 존재로 함께 성장해 오고 있다.

이런 강력한 영향력의 배경에는 이들이 실리콘밸리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창업해 성공한 기업인들로서 창업자들에게 롤 모델이 된다는 것과 자신들이 축적한 어마어마한 재산의 일부를 후배 창업기업인들에게 기꺼이 투자하고 창업 노하우를 공유하는 엔젤투자자로,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있다.  

창업기업에게 자금조달은 생명의 동아줄과도 같은 것이다. 많은 창업자들이 창업 시 가장 큰 애로사항을 자금조달이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페이팔 마피아와 같은 선배 기업인들이 유망한 기업을 찾아 투자하고 키워주는 네트워크가 구축된다면 성공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수도권 지역의 IR(투자설명회)이나 데모데이에 참가해 보면 우리 지역의 창업기업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 수도권의 기업들은 대부분 온라인 채널을 통해서 오프라인 시장과 사업자를 연결시키는 오투오(O2O) 아이템이나 특정 분야의 매니아들을 모아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버티컬 플랫폼 아이템이 많다. 기껏 제품 제조업체라 하더라도 최신 트렌드의 웨어러블 기기나 IoT(사물인터넷) 제품들인데 대부분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제품들이다.  

반면에 우리지역 창업기업들은 제조공장을 제어하거나 모니터링하면서 빅데이터, 스마트팩토리, 스마트그리드, 안전 등을 테마로 하는 아이템들이 대다수이다. 이런 기술들은 현재 화두가 되는 4차산업혁명의 중심에 있기는 하나 생각처럼 쉽게 투자유치가 되지 않는다. 제법 트렌드를 타는 키워드를 앞세우더라도 투자자들이 제조 현장이나 공정, 산업여건 등에 익숙지 않아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시장을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신규성이나 진보성이 높을수록 지속적인 개발비용 투입과 시장 검증을 위해 긴 시간이 소요되므로 투자를 끌어내는 데는 더 큰 어려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기업들이야말로 장기적으로는 축적된 기술 기반의 수출기업으로 성장해 국가 경제에 기여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신뢰하지 못하는 기술, 단시간에 회수가 어렵고 시장 크기가 가늠이 안되는 아이템에 투자가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 지역의 산업과 제조현장을 이해하면서 강력한 멘토역량과 자금력을 기반으로 한 페이팔 마피아와 같은 지역 기반 투자조직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2년간 울산지역에서도 이런 투자생태계 조성을 위한 끊임 없는 노력이 있어 왔다. 2015년 7월 울산시와 중기청 등에서 울산엔젤투자매칭펀드를 조성했고, 2016년에는 울산경제진흥원에서 매칭을 위해 먼저 투자해 줄 2개의 엔젤클럽 결성을 도왔다. 그 중 하나는 지역 벤처기업인들의 모임인 울산엔젤클럽이고 다른 하나는 의사, 변호사, 약사, 세무사 등 지역 내 전문직들이 모여 만든 돌핀엔젤클럽이다. 2016년 5월에는 울산지방중소기업청에서 나서서 지역의 창업지원기관과 민간, 엔젤들을 모아 울산벤처포럼 창립을 유도하고 민간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닦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니스트 내에 둥지를 튼 선보엔젤파트너스가 동남권 중견 제조기업 차세대 경영인 8인을 모아 ‘Founder’s House 13’라는 엔젤클럽을 결성해 지역의 동남권 제조업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접했다. 

이렇게 역동적으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지역의 창업생태계 내에서 ‘페이팔 마피아’와 같은 역할을 해 줄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수도권의 벤처캐피털과는 차별화된 투자 패턴를 지향하며 우리 지역 창업기업과 제조현장을 이해하는 신제조업의 뜨거운 바람을 지역에 몰고 올 ‘그들’을 몹시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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