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곤 UNIST 교수·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조물주의 어깨에 기댄 머리를 잠깐 곧추 세운다면, 무릇 생명체는 존재하기 위해 존재한다. 존재(存在)의 목적을 위해 몇 가지 장치가 욕망의 형태로 작동하는데, 얼추 식욕, 성욕, 권력욕을 꼽을 수 있을 게다. 존재가 1차원의 시간과 3차원 공간의 독립변수에 종속된 까닭에, 존재의 주체인 자아(自我) 역시 1+3차원의 좌표 위에 놓인다. 찰머스의 외재주의를 적극적으로 용납한다면, 자아는 좌표 위의 한 점이 아니라 4차원적 부피를 가지는 덩어리이다.

따라서 욕망은, 자아의 덩어리를 불리기 위해 시·공간적 확장을 추구하는 의지이다. 식욕과 성욕은 각각 개체와 집단의 일시적 혹은 영속적인 시간적 확장, 권력욕은 자아의 공간적 확장을 위한 장치이다. 이렇게 보면, 이러저러한 욕망들은 자아의 확장욕 하나로 통일돼 수렴된다. 명예욕 또한 자아 확장 욕구 중에 하나일 터, 대중적 인지도나 역사의 평가를 위해 간혹 개인적 소아(小我)의 희생을 감수하는 까닭은 더 커다란 확장의 획득에 있다. 

도구의 발달은 욕망의 실현을 수월하게 함으로써 인류의 자아 확장의 범위를 넓히고 속도를 가속시켰다. 석기, 청동기, 철기의 선사시대 구분이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된 재료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는 것은 인류의 자아 확장에 있어 도구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발해의 우리 선조들이 혼자서는 쉽게 처리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나는 오늘 도구의 힘을 빌어 쉽게 해냈다(발해는 대한민국이라는 자아 입장에서 지켜내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지구 밖에서 쏘아대는 GPS 신호에 의지해 수시간 걸음의 식당에 차를 이용해 몇 분만에 도착해서 아침으로 콩나물 국밥을 먹고, 학교 주차장에 들어와 주차 보조시스템 화면을 통해 위에서 차를 내려다보며 정확하게 후방 주차를 했다. 아이폰은 오늘 오후부터는 급격히 추워짐을, 어제 한 대기업집단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재벌3세의 영장이 발부됐음을 알린다. 연구실에 앉아, 세상으로 열린 소통의 문들 (전화, 전자우편, 메신저)로부터 쇄도하는 떠들썩함을 애써 외면하며, 글을 쓴다. 퇴근 후, 연구실의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작성했던 논문을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집의 노트북 컴퓨터에서 마무리 했다. 도구에 의해 공간적으로 확장됐던 자아는 잠이 들어서야 평안한 고립의 착각에 빠져 안도를 느낀다.

자아 확장이 계량화될 수 있다면, 또한 구성원 개개의 자아 확장량의 총합이 그 사회의 자아 확장량이라고 정의한다면, 사회적 자아 확장량이 큰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구성원의 행복도가 높을 수 있다. 그러나 특정량 이상의 자아 확장량이 담보된 사회라면 총합보다는 분포가 중요하다. 적절한 범위의 폭을 가지는 종 모양의 정규분포가 지향(指向)점이라면, 소수의 상위 계층이 총합을 독점하는 분포는 지양(止揚)점이다. 

고도의 자동화 및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4차산업혁명은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자아 확장의 총합을 증진시킬 것임에는 분명해 보이지만, 적어도 과도기에는 분권화, 자율성, 다양성의 주체가 될 능력이 떨어지는 개인에게 디스토피아적이다. 비록 기초 소득 제공 등에 의한 완벽한 사회적 보장이 가능하다 해도, 노동이 없는(그것이 육체 노동이든 정신 노동이든) 윤택한 삶은 직업과 직위에 자신의 가치를 동기화시켜온 이들의 자아 확장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현재의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완벽히 대체된다고 해도, 우리는 또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일을 만들어 낼 것이다. 

예견했던 혹은 예기치 않았던 대선이 훌쩍 건너올 듯 하다. 투표자는 자신을 투영한 후보자를 통해 자아 확장을 하려 할 것이고, 후보자는 자신의 이미지와 정책을 투표자에게 투영시켜 권력을 쟁취하려 할 것이다. 역사는 권력욕 입장에서 더 많은 수의 개체의 자아 확장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체제를 발전시켜 왔고, 그 끝에 민주공화제가 있다. 민주공화제는 다수(majority)의 의견이 반영돼 정부를 구성하되(순수민주제), 헌법에 의해 모든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장함으로써 소수 (minority)를 보호한다. 선거는 민주제의 가장 중요한 절차이며 반드시 왜곡이 없어야 한다. 내재적 자아의 확장을 위해, 혹은 자아의 시간적 확장인 후속 세대를 위해 투표할 일이다. 그리고 개표를 감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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