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거래의 중심지 오일허브

석유는 현 인류의 생활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을만큼 중요한 원자재다.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동력원으로 쓰이고 석유화학의 쌀이라 불리는 에틸렌의 원료가 된다.
 

남구 황성동(북항)과 울주군 온산읍(남항)에 조성될 오일허브 조감도와 당초 계획. (울산항만공사 제공)

석유가 없다면 생활불편은 물론 산업 활동이 중단되고 전 세계가 마비되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전기차 등 일부를 제외한 차량은 모두 멈추고, 전기 사용도 제한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석유로 만드는 플라스틱이 사용되지 않는 제품은 없다. 각종 생활물품과 가전제품뿐 아니라 대다수의 현대인이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제조에도 석유가 쓰인다. 심지어 합성섬유가 들어가지 않은 옷도 찾아보기 힘들다. 가스나 석탄으로도 대체 가능하겠지만 한계가 있다.

이처럼 쓰이지 않는 물건을 찾아보기 힘든 만큼 석유의 거래 규모는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물질 가운데 가장 크다. 석유시장 가운데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 바로 오일허브다. 금융시장으로 따지면 뉴욕, 런던, 상하이이며, 전자거래시장으로는 아마존, 바이두 등이 되는 셈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대규모 석유정제·가공·저장시설+물류+석유거래 관련 금융서비스’ 인프라를 갖춘 석유거래의 국제적 중심지를 말한다.

이미 세계적으로 3대 오일허브가 있다. 미국 걸프만, 유럽 ARA(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벨기에 안트워프), 싱가포르다.

이들 지역은 석유 물동량이 많은 지역에서 석유저장시설을 바탕으로 정제, 가공, 수송, 보관 등이 활성화되면서 오일허브로 발전했다. 또 트레이딩이 활성화되면서 대출이나 보험 등 금융서비스와 선물 등 파생상품거래도 늘어 국제 금융 중심지로도 확대됐다.

미국 걸프만은 원유나 석유제품을 자국에 공급하기 위한 내수형 오일허브다. 유럽 ARA은 수입한 원유를 독일 등 유럽으로 수출하는 배후지역 수출형이다. 

내수보다 수출위주의 트레이딩이 형성된 싱가포르는 중계수출형 오일허브로, 울산이 추구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싱가포르와 네덜란드는 석유거래 산업으로 국내총생산(GDP)의 각각 11.5%, 7.3%에 달하는 큰 부가가치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석유정제와 석유제품 생산시설, 저장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현재 0.64%에 불과하다. 

◆석유소비의 중심이 동북아로 이전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산업이 발전하면서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러나 석유는 연료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에서나 생활물품 제조 등 전방위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세계 석유소비의 중심축은 경기침체, 기후변화대응, 효율향상 등의 영향으로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2040년까지 OECD 국가의 석유 소비량은 17% 감소하지만, 비OECD 국가의 석유소비는 60% 증가, 전 세계 석유소비는 3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정제능력도 개도국 중심으로 급속히 개편 중이다. 

특히 동북아는 중국의 경제성장, 역내 국가들의 투자 확대 등으로 석유소비와 석유제품 물동량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이다.

동북아의 2015년 석유 소비량은 전 세계의 19.7%에 달하고, 2004년 대비 25% 증가했다.

다른 지역이 8%만 증가한데 비해 특히 성장속도가 빠르다. 동북아 국가의 세계 석유소비 비중 중국 2위(12.9%), 일본 4위(4.4%), 한국 8위(2.6%) 등이다.

여기에다 러시아 시베리아 원유, 캐나다 비전통석유 등의 새로운 석유공급원 등장으로 동북아 주변 석유물류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그간 동북아의 석유거래는 아시아 전체 오일허브의 역할을 수행하던 싱가포르와 중복될 것이란 지적이 있어왔다. 특히 1960년대부터 조성돼 제도 등이 무르익은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한국은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우려됐다.

그러나 최근 싱가포르는 동남아지역 오일허브로 국한되고 중국남부를 경계로 아시아시장이 분리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싱가포르의 석유 수출물량 비중은 2006년 동북아 18.4%, 동남아 66.7%에서 5년 후인 2011년에는 동북아 9.1%, 동남아 73.5%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와 별도로 동북아에 신규 오일허브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울산이 오일허브 최적지

동북아 국가 가운데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오일허브 조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3대 오일허브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번 제대로 선점해 놓으면 부가가치가 계속 창출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들여 시설만 갖춘다고 오일허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지정학적인 위치, 제도, 배후 석유화학 제조 시설과 심지어 국가적인 매력도까지 수많은 전제조건에 부합할 때 비로소 시장에서 선택된다. 

다른 두 국가는 한국에 비해 약점을 갖고 있다. 일본은 항만물류비용이 높은데다 지진과 태풍으로 인해 거대한 기름저장시설을 두는 오일허브를 장기간 유지하기에 불안한 측면이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얕은 항만 수심이 가장 문제다. 또 안개와 결빙 등 휴항일수가 많아 거대한 원유선이 입출항하기에 적절치 못한 항만 환경이 걸림돌이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규모의 단일 정유공장 중 3개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단위 공장 당 정제능력은 일본의 3.6배에 달한다. 운임, 정제비, 항비, 수심 등 대부분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중국, 일본과 러시아까지 동북아 해상물류의 중심지인데다 향후 북극항로 개발 시 연결에도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갖추고 있다. 

특히 울산은 울산항이라는 수심이 상대적으로 깊은 항구를 갖춰 대형 석유운반선이 입출항하기에 유리한데다, 배후에는 이미 대규모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돼 있어 오일허브 조성에 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울산 오일허브가 성공한다면 2040년까지 60조원의 생산유발효과와 2만2,000명의 고용유발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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