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우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20년도 더 지난 유학 시절의 이야기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중국인 선배가 본인이 타던 승용차를 내게 물려주려 했다. 원래 선배들이 후배에게 물려주던 차인 데다가 너무 오래된 경차라 돈을 받을 수 없다며 그냥 받으라고 했다. 어려웠던 시절이라 체면도 없었고 한두 번 그럴 수는 없다며 형식적인 거절을 하다가 흔쾌히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집 부근에 왕복 1차선 도로가 있었는데 맞은 편의 차량과 만나면 누군가는 양보해야만 지나갈 수 있는 도로였다.

그 날은 마주한 차와 거의 같은 순간에 양 끝단에서 진입한 날이었다. 나는 경차인 데다가 유학생이라는 이상한 주눅이 들어있어 양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맞은 편 운전자는 급했는지 상향등을 번쩍이길래 더더욱 기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 그냥 먼저 출발하려는 순간 서서히 진입을 하는 게 아닌가? 초보운전자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차가 빠져나가면서 경적을 “빵!”하고 울리는 게 아닌가? ‘기껏 양보하고 기다려줬는데 왜 성질을 부리고 가는 거야? 예의 없는 운전자 같으니’라고 투덜거리면서 귀가를 했다. 

며칠 후 학교에서 일본인 동기와 함께 점심 식사를 같이 하던 중 그 얘기를 꺼냈다. 1차선 도로에서 본인이 먼저 가겠다고 상향등을 깜빡거려서 양보해줬더니 경적을 울리고 가는 무례한 운전자를 만났었다고 말이다. 그 동기는 식사를 잠시 멈추고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상향등을 켠 것은 양보의 의미로 먼저 가라는 뜻이고 경적을 울린 것은 오히려 감사의 인사라고 말이다. 주위의 공기가 멈춘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운전상식과는 정반대였고 우리보다 운전 예절이 더 발달한 나라라는 감정까지 뒤섞이기 시작해 창피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냥 잠자코 있기에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어색해서 한국의 경우에는 상향등을 켰을 때는 경고를 의미하며 경적 또한 경고나 불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말하는 도중에 더 부끄러움을 느꼈으며 설명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러니 말이다. 혹시 일본인 동기가 한국에서 운전하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범주 속에 포함시키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어른과 젊은이, 남자와 여자와 같은 상대적인 범위를 만들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외모, 피부색, 고향, 혈액형, 직업, 학교 등과 같은 비슷한 범위에 속하는 사람들을 같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까지 나오는게 아닐까 한다. 특히 외국인을 만났을 때는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기억을 되짚어본다면 당시에 중국인 선배에게서 받은 중국인의 느낌은 ‘부족하면 안 되는 호의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일본인 동기에게서 받은 일본인의 느낌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조심스러운 사람들’이었다. 나는 과연 그들에게 어떤 느낌을 준 한국인이었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고는 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한국에서 자라고 배우면서 한국인의 특성과 문화를 가진 개인으로 성장했다. 우리의 문화 역시 하루아침에 융성하거나 자리 잡은 것이 아니고, 오랜시간 동안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다가 만들어지며 그 속에서 유기체와 같이 변화해왔다. 한국뿐 아니라 각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문화와 개성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이제 필자는 다양한 문화권의 유학생들을 만나게 됐다. 중국, 일본,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몽골, 베트남 등 기억에 남는 학생의 국적만 해도 6개국 이상이다. 모두가 다른 느낌이었으며 모두가 한국에 적응하려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며 전공수업에 노력한다. 거기에 아르바이트까지 추가로 하며 말이다. 한국의 보편적인 대학생과 비교를 하면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적어도 2개 국어에 능통하며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타국에서 무엇인가를 향해 도전하는 모험가들이다. 유학생들은 졸업 후 한국에 남아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로 활동을 하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자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의 기억이 좋게 남아 홍보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 부분만 생각하더라도 외롭고 어린 유학생들에게 조금 따뜻하게 대해주자. 그들은 아르바이트 업체에서 손님에게 반말과 욕설을 듣는 것은 물론이며, 일상생활 속에서도 무시를 당해 본 경험이 아주 많다고 한다. 반대로 한국 유학생이 외국에서 생활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무시를 당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그들은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되는 경우 더더욱 조심스럽게 대응한다.

우리가 본인과 가족들이 피해 받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만 상대에게 조심하면 나눔의 문화가 더욱 탄탄하게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 어질고 선하며 따뜻한 마음이 미덕인 우리 한국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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