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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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꽃대 하나, 
인삼 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 들린다. 
그 끝을 무심히 따라가면 투명 창이 보인다. 


한 사내가 꽃대 하나 밀어 올려 보낸 뒤 
땅속에서 환하게 반가부좌 가만 튼다. 
창문 안 들여다보는 내 눈에도 삼꽃 핀다. 

무아경, 온몸에 흙물 쏟아져도 잔잔하다. 
깊고 깊은 선정삼매 고요히 빠져있는 
저 사내, 인삼반가사유상의 얼굴이 환히 맑다. 


홀연히 진박새가 날아들어 묵언 문다. 
산 너머로 날아간 뒤 떠오르는 보름달 
그 사내 침묵사유 만발하여 나도 활짝, 환하다.

*배우식의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全文

 

상형문자(象形文字)는 말 그대로 사물의 모양새를 본떠 만든 글체다. 시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본 사물의 관점이 어떤 형상으로 다가왔는가에 따라 그만의 시의 철학이 녹아 난다. 배우식의 「인삼반가사유상」이 그렇다. 참 특출한 발상이다. 땅속을 토굴 삼아 정진한 한 사내, 해탈에 이르게 된 과정이 곧 자신의 내면이리라. 

●시조시인 배우식(裵佑植·1952~ ). 충남 천안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시문학 및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시집 『그의 몸에 환하게 불을 켜고 싶다』, 시조집 『인삼반가사유상』, 『연꽃우체통』, 문학평론집 『한국 대표 시집 50권』(공저) 등을 상재했다. 2011년 시 『북어』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수주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사)열린시조학회 회장과 시조 전문지 <정형시학> 주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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