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일하고 싶은 울산… 노동자 현주소<끝>
5. 너도나도 사장님, 자영업자들의 비애

2월 기준 울산 자영업자 9만5,000명…작년보다 10.8% 늘어
가족 등 무급가족종사자 1년새 56.7%↑ 2만2,000여명 달해
갈수록 운영 어려워지는 편의점주, 부부 교대로 24시간 근무
경기 악화로 매출 계속 줄어…임대료·재료비 맞추기도 빠듯
자영업 권장 정부, 기형적 구조 만들어…생계 위기 내몰아

 

울산지역 자영업자가 지난 2월 기준 9만5,000명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취업난, 실직 등으로 자영업에 입문한 사람들이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입을 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진은 상가가 밀집한 중구 중앙전통시장.

“길거리에서 ‘사장님’하고 부르면 서너명은 돌아본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10명 중 4명이 자영업자다. 취업난에 허덕이던 청년, 실직한 중년, 정년퇴직한 노년…. 수많은 계층이 자영업자가 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이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저임금 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 동안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그만큼의 대우는 받지 못한다. 그 책임도 스스로의 몫이다.

◆울산지역 자영업자 9만5,000명… 1년새 10.8% 증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전국의 자영업자 수는 552만1,000명에 이른다. 이는 1년 전보다 21만3,000명이 늘어난 수준이다. 이 증가폭도 2002년 4월 22만명으로 늘어난 이후 14년만에 최대치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나홀로’ 자영업자도 395만4,000여명이다.

같은 기준으로 울산지역 자영업자도 9만5,000여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취업자(57만1,000여명)의 16.6%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지난해에 비해 10.8%(9,000여명)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가족이나 친인척 중 별도의 임금을 받지 않고 정규근로시간의 1/3이상을 근무하는 이들을 ‘무급가족종사자’라고 한다. 예로 A씨가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닭을 튀기는 사모님이나, 배달을 하는 아들이 이 경우다. 이 ‘무급가족종사자’도 2만2,000여명, 전체 취업자의 3.9%에 달한다. 눈 여겨 볼 것은 1년 사이 56.7%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를 합쳐 비임금근로자로 구분한다. 비임금근로자가 증가한 데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경제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과 구직난, 청년들의 취업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장님은 사장님인데…” 밤낮으로 일에 매여도 최저임금

해가 바뀔 수록 나빠지는 경기를 자영업자들은 절실하게 체감한다고 했다. 중구의 한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는 A(46·여)씨는 새우 등이 터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본사가 배송비 절감 정책이라며 묶음 주문이라는 걸 시작하면서 가게는 필요한 물량보다 더 많은 양을 떠안게 됐어요. 근데 장사는 예전보다 훨씬 안되요. 본사가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때만 반짝이지 오히려 행사기간이 끝나면 사람들은 지갑을 더 닫아버려요. 악순환이죠.”

중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54)씨는 부인과 함께 일한다. 낮 동안은 부인이, 밤에는 B씨가 가게를 본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 저녁식사를 해본지도, 함께 휴식을 취해본지도 오래다. 식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음식으로 떼우기 일쑤다. 밤새 가게를 지키는 B씨는 오전 10시 부인이 교대해주면 겨우 가게 안에 있는 방 한켠에서 눈을 붙인다. 벌써 2년째 이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를 고용했었다. 형편상 최저임금도 못채워줬는데, 몇년 전부터는 장사가 잘 안되서 그마저도 아껴야했다.”

부부가 그렇게 24시간을 가게에 매여야 생계가 유지된다고 했다. 사실상 노동강도와 시간을 따지면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미친다.

◆“취직 안되면 ‘창업’하라면서요?”

모든 자영업자들이 ‘자의적’으로 이 길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최근 취업, 재취업을 하려던 이들이 끝내 자영업자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C(31)씨는 몇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다 결국 개업했다. “요리하는 게 다 비슷해요. 계약직으로 들어갔다가 살아남는 사람을 얼마 없어요. 업무강도도 높고. 나이는 점점 드는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자꾸 줄어들더라고요. 큰 마음 먹고 개업했는데, 쉽지는 않네요.” 장사가 영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임대료를 내고 나면 재료비 맞추기도 빠듯한 살림이라고 했다.

1년 전 카페를 운영했던 D(28·여)씨는 현재 무직이다. 지난 1년을 “빚에 시달리던 때’라고 기억하는 그는 사회가 무책임하게 자영업을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난에 어려워하는 청년들에게 사회는 창업을 권하잖아요. 그럴듯하게 ‘도전하라’고 떠밀어요. 근데 도전은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사회는 실패한 이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는 주지 않아요. 도전하라고만 하면서 넘어진 이에게는 ‘네가 부족해서 그런거야’라고만 하죠.”

실제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중은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나라다. 노동계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업의 고용 확대 등을 이끌어내지 못한 정부가 ‘자영업’을 권장하면서 그 수가 과도하게 증가했다고 해석한다. 기형적인 구조는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르바이트와 같이 이들에게 고용된 최하층 노동자의 권리 침해로 악순환된다고 보고 있다.

 

■권남철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울산센터장
“창업, 재취업 못잖은 노력·공부 필요
 교육 등 사회적 인프라 보장돼야”

“우리는 창업이나 경영 이런 것들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죠?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진학, 시험, 취업을 위한 것들이잖아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권남철 울산센터장은 ‘교육’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소상공인은 도소매의 경우 4인 이하, 제조업의 경우 9인이하 사업장을 말한다. 울산지역 7만2,000여개의 법인 중 6만4,000여개 즉 88%가량이 이에 해당한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이 ‘자영업자’다.

센터를 찾는 이들 중 80%가 자금적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한다. “최근 소비심리가 많이 위축됐습니다. 은퇴가 본격화된 베이비부머 세대가 재취업은 어려워지니까, 수입은 한정돼 있는데 수명은 길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갑을 닫게 되는 겁니다. 부모의 수입이 줄어드니 이를 부양해야 하는 자녀 세대도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죠. 소상공인들은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의 직격탄은 맞을 수밖에요.”

센터는 지난해부터 ‘희망 리턴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폐업한 업주가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일정 수당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난 한해만 200여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다시 말하면 지난 한해만 200여명의 자영업자가 폐업했다는 의미다.

센터는 한 가게가 개업한 뒤 5년을 유지하면 ‘생존’했다고 파악한다. 그런데 이 생존율은 29%에 불과하다.

권남철 센터장은 ‘창업’ 또한 ‘재취업’ 못지 않는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인프라가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젊은 친구들이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흔히들 ‘대학은 졸업하고 나서…’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사나 사업을 후순위에 두고 있어요. 취업하려다가 안되면, 시험 쳐보고 안되면, 이렇게 말입니다. 취업, 시험 이런 것들은 ‘창업’과 길이 달라요. 배워야 하는 것도 다르죠. 그 고민 없이 창업 시장에 뛰어드는 건 상당히 위험합니다. 개인은 소비 심리를 잘 파악해서 좋은 업종을 선택해야 하고, 사회는 이를 도울 수 있는 교육 인프라를 확대해야죠.”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