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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칼럼] ‘소양강 처녀’와 ‘울산 큰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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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7.04.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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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넘는 박달재·소양강 처녀 등
국민작사가 반야월의 히트곡
춘천시 소양댐에 노래비도 세워

상징물 아쉬운 울산 원도심 중구
‘울산 큰애기’ 캐릭터 상징화
‘산업화·넉넉한 인심’ 널리 알려야

 

김병길 주필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 가사로 유명한 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 1950년 국민작사가 반야월(1917∼2012)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박달재에서 펑크가 났다. 낭패 끝에 그 곳에서 서성거리다 이별하는 어느 남녀를 보고 문득 악상이 떠올라 지었다는 노래가 ‘울고 넘는 박달재’였다.

서울로 과거를 보러가던 박달이가 객주집 처녀 금봉이를 보고 마음을 뺏겨 버린다. 과거에 급제하고 만나자고 했던 두 사람. 그런데 눈을 뜨나 감으나 앉으나 서나 금봉이 생각만 떠오른 박달이가 과거에 합격할 리가 없었다. 낙방한 박달이는 금봉이를 찾아갈 면목이 없었다. 박달이를 기다리다 지친 금봉이는 숨을 거두고 약속을 못지킨 박달이는 비몽사몽 끝에 금봉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죽는다.

신파조의 스토리 구조지만 이 노래 때문에 금봉이와 박달이의 전설은 동상으로도 만들어지고 스토리가 다듬어 졌다. 반야월 선생이 타계한 2012년 3월 26일 그날은물항라 저고리가 궃은 비에 젖은 쓸쓸한 날이었다.

‘물항라’는 물들인 모시 옷감이다. 반야월은 ‘열아홉 순정’,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 등 노랫말로 우리 겨레의 심장을 물들인 물항라 시인이나 마찬가지다.

가수의 화려한 꿈을 안고 서울 명보극장과 가까운 곳에 있던 한국가요반세기 가요작가동지회 사무실에서 일하던 춘천 소양강 상류 어느마을 출신 18세 소녀 윤기순(尹基順). 가요작가 동지회를 드나들던 가요작가 김종한 선생의 무료 레슨을 받아오던 윤기순은 어느날 반야월, 김종한, 월견초 선생 등을 고향으로 초대해 나룻배를 타고  소양강변 경치 좋은 갈대 숲 섬으로 향했다. 

이때 시상(詩想)이 절로 떠오른 반야월 선생은 ‘소양강 처녀’ 가사를 가다듬었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열 여덞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 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소양강 처녀’ 1절) 1969년 이 가사는 작곡가 이호 선생의 작곡에 가수지망생 김태희의 노래로 취입해 크게 히트 하게 된다.

1995년 춘천시에서는 작사가 반야월 선생을 초청했다. 춘천의 명소 소양강, 그리고 소양강 댐에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소양강 처녀’ 노래비를 세우기로 하고 반야월 선생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그리고 노랫말 중 ‘열 여덞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의 모델이 된 주인공이 있다면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반야월 선생은 1968년 소양강 상류 아름다운 섬을 기억에 떠올리며 가수 지망 소녀 윤기순을 소개했다. 하지만 소양강 상류에 살았던 노래의 주인공 윤기순의 가족은 이사를 가버린지 오래였다.

춘천시는 전국의 경찰 컴퓨터망을 통해 윤기순이 광주시에 살고 있는것을 알아냈다. 끝내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한 윤기순은 무명가수 윤미라로 광주의 야간업소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이후 2000년 윤기순과 ‘소양강 처녀’에 얽힌 사연은 ‘이것이 인생이다’라는 TV 다큐멘터리로 방영되기도 했다.

1960년대 가수 김상희가 불러 크게 히트한 가요 ‘울산 큰애기’. 젊은이들이 성공을 위해 서울로, 서울로 향하던 시절의 시대 상황을 담은 ‘울산 큰애기’는 ‘국민가요’ 반열에 올랐다.

가요 ‘울산 큰애기’의 모델은 울산 여인 이었다. 작사가 탁소연은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서울로 떠난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도 한눈 팔지 않고 착실하게 사는 울산의 어느 며느리 사연을 듣고 노랫말로 만들었다.

울산의 원도심 중구는 넉넉한 인심의 울산 큰애기 캐릭터를 상징화 하고 9급 공무원으로 임명, 홍보대사로 내세웠다. 중구원도심은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의 흔적을 간직 하고 있어 울산을 상징할 수 있는 곳이다.

종가집 맏며느리와 닮은 ‘울산 큰애기’ 캐릭터를 확실한 중구의 상징인물로 널리알려 두고두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울고 넘는 박달재’, ‘소양강 처녀’가 지역을 상징하는 기념 모델로 모든 이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듯, ‘울산 큰애기’가 울산 중구는 물론 울산 방문의 해를 맞은 2017년 울산의 새로운 관광 메이커로 우뚝 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 문의

김병길 주필

기사 수정 :   2017-04-19 21:12   노옥진 기자
입력.편집 :   2017-04-19 21:11   노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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