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문화·역사 근거 ‘학의 고장’
과거 태화·동천강 등 철새 낙원
공업화로 늪 사라지면서 멸종위기

충남 예산 황새 복원·개체수 확대
강원 삼척시, 도시상징 제정 추진
타 지역 ‘학 선점’ 경쟁에 우려

‘학 고장, 생태관광도시’ 심포지엄
울산 학 복원 의미 등 정체성 정립
시민·환경단체 범시민추진위 발족

임진혁(65) 유니스트 명예교수 겸 포스텍 교육혁신 특임교수가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태화강에 학을 돌아오게 하고, 태화강의 샛강 혹은 반구대에 학 공원 조성, 학 생태관을 건립해 학 탐조, 생태 연구·복원, 그리고 울산의 아이콘이자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고 강조했다. 김정훈 기자 idacoya@iusm.co.kr

공업도시 이미지가 강한 울산이 생태관광 도시로 도약하려면 학(鶴)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열을 내는 인물이 있다.

울산 출신인 임진혁(65) 유니스트 명예교수 겸 포스텍 교육혁신 특임교수 얘기다. 병영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를 마치고 부산과 서울, 미국서 유학하다 2008년 유니스트가 개교하면서 40년 만에 울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학을 울산의 역사와 정체성을 대표할 아이콘으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다. 과거 울산이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국립대 유치에 나섰고 그 염원이 유니스트 설립으로 귀결됐듯, 학이 울산의 아이콘이 될 수 있도록 범시민 운동에 나서겠다는 거다.

태화강에 학이 훨훨 나는 모습을 보게 될 날을 ‘학수고대’ 한다는 임진혁 교수의 얘기를 들어봤다.     

-‘학을 울산의 도시 상징물로 정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왔다. 왜인가?  

▲학은 울산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울산학춤 창시자인 김성수 박사를 알면서부터 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3년에 울산발전연구원이 주최한 ‘울산학춤 활용방안’이란 콜로키움의 좌장을 맡게 되면서 학과 관련한 글들도 자연스럽게 읽게 됐다. 

그때 ‘천신이 금신상을 입에 문 쌍학을 타고 계변성에 내려 왔다’는 계변천신 설화를 읽고는 깜짝 놀랐다. 유년시절 우리 집이 병영이었는데, 집에서 5리 거리였던 제일중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그 언덕길이 바로 ‘개비고개(계변고개)’였더라. 

지금의 울산MBC가 있는 야산에 있던 신라시대의 성이 학성이었다는 사실도 그 때 알게 됐다. 어릴 적에는 ‘학성’이라고 하면 당시의 학성공원인줄만 알았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학성’은 울산 전체를 지칭하는 별호로 사용됐던 셈이다. 

정체성의 뿌리는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근거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울산은 ‘학의 고장’이었다. 

-울산이 ‘학의 고장’이라는 다른 사례는?

▲울산에는 회학, 비학, 무학산, 학성산, 신학성, 학성 등 다른 도시에 비해 학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울산 동헌 현판에는 반학헌(伴鶴軒)이라 쓰였고, 그 남문은 가학루(駕鶴樓)인데 복원 중이다.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한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윤곽이 들어난 객사 명칭은 학성관(鶴城館)이었다. 태화루 천정의 서까래에도 학 4마리가 그려져 있다.

반구대 화학암(畵鶴巖)에는 학 두 마리가 새겨져 있고, 태화강 십리대밭의 오산에 있었던 학천암(鶴天巖)에도 학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다만, 학천암은 수로 정비공사를 하면서 사라져 애석할 따름이다. 

-멸종위기종인 학의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가능하나?

▲과거 울산은 동해안쪽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5개의 강 즉 태화강, 동천강, 여천천, 외황강, 회야강이 형성한 광활한 늪지대가 있어 학을 비롯한 철새들의 서식에 적합했다. 

하지만 이 늪지대는 공업화 과정에서 공장의 부지로 바뀌어 공업화의 밑거름이 됐다. 울산과 역사적으로 깊은 인연을 가졌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학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죽음의 강에서 생태하천으로 거듭난 태화강에 학이 돌아오게 하자. 태화강의 샛강 혹은 반구대에 학 공원을 조성하고 학 생태관을 건립해 학 탐조, 생태 연구·복원, 그리고 울산의 아이콘이자 생태관광자원으로 활용하자. 

울주군에서 건립 중인 국내 최대의 연어생태관과 연계하면 관광유발효과는 더욱 크게 될 것이다. 

임진혁 교수는 “학의 복원은 울산의 생태와 관광, 역사적인 요인 말고도 도시의 경영적인 측면과도 맞물려 있다”고 주장했다.

-학을 복원하자고 하면 주변 반응은 어떤가? 

▲지난 2015년쯤 울산시는 1995년에 제정된 시목(市木), 시화(市花), 시조(市鳥)를 바꿨다. 
시목은 은행나무에서 대나무로, 시화는 배꽃에서 장미로 바꿨지만 백로인 시조는 그대로 두었다. 

당시 나도 선정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는데 시조를 학으로 바꾸자고 했더니 대다수가 ‘백로는 많지만 학은 볼 수가 없어서 안 된다’고 하더라. 정말 안타까웠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태화강에 가면 많은데 왜 복원해야 하는가’이다. 태화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백로와 왜가리를 학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은 여름철새이며 학에 비해 덩치가 작고 목이 에스(S)형태로 구부러지며 나무에 주로 서식하지만 학은 나무에 앉지 못한다. 

학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황새는 머리에 붉은 반점이 없고 나무에서 서식하며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고 단지 부리를 부딪혀서 ‘딱딱딱’하는 소리를 낸다.

-학을 도시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사례는 없나?

▲충남 예산이 2015년 6월에 황새공원을 개장했다고 해서 벤치마킹차 한 번 가봤다.
 
문화재청의 공모사업을 통해 190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아 45만㎡의 부지에 황새마을을 조성했다고 한다. 교원대학교에서 20여 년 간 황새 복원을 시도한 끝에 200마리까지 개체수를 늘렸기에 자연방사까지 할 수 있게 됐단다. 

해당 지자체는 황새로 인한 생태복원 효과 말고도 연간 4,000억~5,000억원의 경제적 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공원 위를 선회하는 황새를 찍기 위해 카메라맨들이 분주한 것을 보면서 ‘왜 울산에서는 이런 것이 되지 않는가?’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 강원도 삼척시는 학을 도시 상징으로 하려 2012년에 경북대학교와 학 복원을 위한 상호협력을 체결했다고 한다. 그 후 정치적 여건이 변한 탓에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처럼 차별화와 관광자원의 발굴을 위해 많은 도시들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누군가 학을 선점할까 염려된다. 

-학의 복원을 위해 준비 중인 것이 있나?

▲2012년에 발족한 그린울산포럼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우리 포럼에서는 오는 6월에 대시민 토론회인 ‘학(鶴)의 고장, 생태관광도시 울산’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울산시는 2017년을 울산방문의 해로 설정해 400만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현재 울산은 산업화 50년을 넘어 향후 50년을 새로이 준비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우리 포럼에서는 심포지엄을 통해 학 복원과 생태복원의 의미, 학 고장 울산의 재조명, 학 복원사업의 타당성 등을 통해 울산의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특히 심포지엄 이후 울산의 시민·환경단체를 아우르는 범시민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본격적인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경영학부 교수를 지냈다. 생태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닌데 학의 복원을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학의 복원은 울산의 생태와 관광, 역사적인 요인 말고도 도시의 경영적인 측면과도 맞물려 있다. 

시대의 화두가 힐링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의 하나로 슬로우 타운(Slow town) 조성사업이 여러 곳에서 경쟁적으로 진행 중이다. 

차별화를 위해 시간이 느리게 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거꾸로 가는 즉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고려, 신라, 청동기, 선사시대 그리고 공룡의 발자국이 찍혔던 1억 년 전으로 돌아가는 ‘백 투 히스토리 타운(Back-to-History Town)’을 조성하자. 

반구대에는 학이 깃들었다는 학소대(鶴巢臺)와 학이 그려져 있는 화학암(畵鶴巖)이 있다. 학을 복원해  반구대에서 볼 수 있게 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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