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임 모씨 '집행유예' 적절성 논란
 

'대한항공 기내난동 사건'의 피고인 임 모(35) 씨가 최근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것이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지방법원 형사9단독 박재성 판사는 지난 13일 선고공판에서 항공보안법상 항공기안전운항저해 폭행 및 업무방해, 상해, 재물손괴,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임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법원은 “임씨가 2차례 기내에서 소란을 피운 행위는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초범으로 피해자들에게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고 합의했고, 피해자들도 선처를 탄원하는 점, 유사사건 처벌의 형평성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임씨는 지난해 12월 20일 베트남 하노이발 인천행 대한항공 여객기의 프레스티지석(비즈니스석)에서 만취 상태로 2시간 가량 난동을 부린 혐의로 지난 1월 구속기소됐다.

탑승 전 하노이공항 라운지에서 양주 8잔을 마신 임씨는 탑승 후에도 양주 2잔 반 가량을 더 마신 상태에서 옆좌석에 있는 승객의 허락없이 김 등 반찬을 가져다 먹고 고추장을 가져가려다 제지당하자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또 이를 제지하던 객실승무원 사무장 A(36·여) 씨 등 승무원들을 폭행하거나 밀쳐 상해를 입혔다. A사무장에 대해서는 얼굴과 복부를 때리거나 발로 차 넘어뜨렸다. 또 난동을 말리던 정비사에게 욕설과 함께 침을 뱉으며 정강이를 걷어차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도움으로 케이블타이로 임씨의 양손을 묶어 겨우 제압할 수 있었다. 

◆기장, ‘회항’ 고려할 정도로 상황 심각…극심한 스트레스 

이같은 내용은 그동안 언론보도를 통해서 많이 알려진 부분이다. 그런데 판결문을 통해 임씨의 기내난동은 기장이 회항이나 비상착륙을 고려할 정도로 상황이 아주 심각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장은 A사무장으로부터 회항 의견을 전달받고 이를 검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회항하거나 다른 공항에 비상착륙할 경우 승객들의 불편 등을 고려해 기장은 최악의 경우 비상착륙에 대비하면서 목적지인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기장은 특히 헤드셋을 쓰고 있었지만 조종석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프레스티지(비즈니스)석에 탄 임씨의 고함을 들으며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다. 

기장은 경찰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고 부기장도 엄청나게 예민한 상태였다. 비행이라는 게 안전이 가장 중요한데 비행기를 조종하는 저와 부기장이 심리적인 불안을 느끼는 것 자체가 안전에 큰 위협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여승무원들, 엄청난 후유증 시달려…극심한 불안, 출혈 

폭행을 당한 4명의 여성 승무원들은 이번 사건 이후 엄청난 후유증을 겪었다. 

A사무장은 30일 간의 치료를 요하는 ‘극심한 불안, 우울감, 불면, 요추(腰椎) 염좌(捻挫:갑작스러운 충격 등으로 근막이나 인대가 상하거나 타박상으로 피하 조직이나 장기(臟器)가 상한 것), 내부 출혈’ 등, 또 다른 승무원은 21일간의 치료를 요하는 ‘요추부 타박상 염좌, 좌 슬관절부 타박상, 피하 출혈’ 등의 상해를 입었다. 다른 2명의 여승무원도 14일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었다. 

일각에서는 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항공대학교 황호원 교수는 “밀폐된 공간에서의 2시간에 걸친 폭행 등 소란으로 기내 승객들에게 지대한 불안감과 동요를 야기했으며, 승무원에 대한 폭행으로 안전운항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했는데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석연치 않은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폭행 등 기내난동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항공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간과한 판결로, 일벌백계로 기내 난동에 대해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항공보안법 46조 항공기안전운항저해 폭행죄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 단순 기내 소란행위보다는 처벌 수위가 훨씬 높아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한 사람에 대해 2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부산에서 괌으로 가는 항공기에서 술에 취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제지당하자 행패를 부린 40대 한국인 치과의사는 지난달 미국 법정에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호주의 경우 승무원을 폭행, 협박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한편, 그러한 폭행과 협박이 승무원의 업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 경우 2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검찰, 오늘 중 항소 여부 결정…항소 가능성 높아 

임씨에 대해 징역 2년과 벌금 500만원을 구형한 검찰은 20일 중 항소 여부를 결정 방침이다. 항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인천지검은 "피고인은 항공기 운항을 위험하게 한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사안이 무겁고 재범을 저질러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 1월 인천지검은 임씨가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일으킨 지난해 9월 8일 난동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이송받아 함께 기소했다.

당시 임 씨는 인천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여객기 안에서 술에 취한 채 의자를 부수고 승무원들을 폭행한 혐의로 베트남 현지 경찰에 인계돼 베트남 법원에서 벌금 200달러를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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