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었노라…’ 박목월 작사 김순애 작곡 ‘사월의 노래’ 첫 구절이다. 시인이 여학교 교편을 잡고 있던 시절, 소녀들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쓴 시 였다고 한다.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라는 후렴구는 봄에 대한 격조 높은 예찬이자, 어쩌면 8년 뒤에 벌어질 4·19혁명을 떠올리게도 한다.

봄꽃들이 지고 있다. 꽃은 피었다 싶으면 지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이 피고 진다’라고 탄생과 소멸의 의미를 이어서 표현하기도 한다. 벚꽃 잎들은 눈송이처럼 날려가 버렸다. 무정한 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 갈 곳 없이 소실되는 꽃잎들은 정작 너무 고와서 서럽다.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탄생과 소멸을 동시에 품고 있는듯한 꽃의 삶은 그 자체로 존재의 모습을 담고 있다. 거역하고 싶지만 거역할 수 없는 한계, 그 모순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바람에 휘날리는 꽃잎들의 화려함은 비극적이다. 젊은 날 이형기 시인이 ‘낙화(落花)’를 보며 단호히 읊었듯이. ‘가야할 때가 언젠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꽃잎이 지는 어느 날.’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시인의 말처럼 비극적이지만 ‘샘터에 물이 고이듯 성숙하는’ 것인지 모른다.

꽃잎이 지면 꽃이 있던 자리엔 씨를 품은 열매가 또 자란다. 시든 꽃을 가리켜 ‘죽은 꽃’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다. 새 생명을 품은 뒤에야 식물의 자궁을 덮고 있던 꽃잎은 공중으로 흩날린다. 봄을 대표하는 노래 중에 ‘봄날은 간다’와 ‘벚꽃엔딩’이 있다. 짧은 봄에 대한 아쉬움과 무의식이 반영돼 있다. 이 봄, 화려한 사월의 꽃보다 더 아름다운 봄날의 시간들이 시나브로 흩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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