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령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2017년은 ‘울산광역시 승격 20주년’이자 ‘울산방문의 해’이다. 또한 국립민속박물관과 울산광역시가 함께 진행하는 ‘울산민속문화의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계기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과 울산시는 울산의 마을조사와 조사보고서 발간에 이어 울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특별전을 준비하게 됐다. 

나는 이 특별전을 위해 작년 12월부터 여러 차례 울산을 오갔다. 울산은 60% 이상이 외지사람들로 구성돼 있다고 했다. 역사적으로 이미 신라시대 처용설화를 통해 외래자의 흔적을 볼 수 있었고, 1962년 특정 공업지구 지정 이후에는 외부의 사람, 문화, 기술들이 그야말로 물밀듯이 울산으로 모이게 됐다. 울산 전시기획자로서 나의 고민은 여기서 부터 시작됐다.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직업의 울산사람들을 만났지만 울산이 과연 수용과 포용의 도시인가 하는 물음이 목까지 올라왔다. 게다가 현대사회에 들고나는 외부인들의 문제는 비단 울산만의 고민도 아닌 터였다.    

그러나 그 열쇠는 울산사람들에게 있었다. 울산은 어느 도시보다 향우회가 발달돼 있다. 고향사람들과의 친목 교류를 목적으로 결성된 향우회는 결과적으로 보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끼리 어떻게 하면 울산에 빨리 잘 적응할 수 있을까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고, 울산에 터를 닦은 이상 울산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울산에는 이러한 향우회뿐만 아니라 직장에 함께 다녔던 근로자들의 모임, 가족들 간의 모임 등 지금도 평균 1인당 적어도 3-4개씩의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울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장은복씨는 “엄마는 항상 집에 안계셨어요. 이웃 아주머니들하고 하루 종일 같이 몰려다니면서 시장도 보고 부침개도 부쳐 먹고…아주 친하게 지낸 집은 6~7집 정도 였는데 숟가락이 몇 개인지 쌀독에 쌀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알 정도였다”고 했다. 
1983년생인 김혜빈씨는 “문도 안 잠그고 이웃들이랑 왕래도 엄청 많고 잘 어울려 지냈기 때문에 큰집에 가면 진짜 큰어머니가 계시지만 그 큰어머니보다 더 가까이 지낸 그런 아주머니가 계셔서 처음에는 205호 아줌마 이렇게 부르다가 너무 자주 만나고 가깝게 지내고 이러다보니까 동생이랑 저랑 큰엄마라고 불렀다. 항상 어울려서 맛있는 거 하면 같이 해서 먹고 그런 공동체 생활을 했던 같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모습이 1970~80년대 울산에 들어온 근로자 가족들의 일상이었다면, 이주 1세대들도 점차 울산사람이 돼갔다.   

부산 출신의 1963년생 김상식씨는 “처음에 일산동에 있는 현대중공업 내 일산 숙소라는 기숙사에 있었어요. 거기는 단층건물이었는데, 한 방에 8명이 같이 기거를 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다른 지역에서 오신 나이 드신 형님들이 많았어요. 그 형님들이 참 잘해줬어요. 여러 가지 개인적인 대소사도 잘 챙겨주고, 회사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된다든지 하는 충고도 해주시고, 그때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한편 1949년생 속초에서 온 정봉일 씨는 “처음 남목 하숙집에서 울산생활을 시작해 지금 바다가 바라보이는 요지에 건물을 올리는데 40년이 걸렸다. 돌아보면 울산이라는 곳은 삶의 목표의식을 갖게 해 주었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고 하면서 “이제 선친의 산소도 울산으로 이장해 와 모시고 있고, 울산을 떠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하는 대목에서 나의 고민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번에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4월 19일부터 6월 19일까지 ‘울산민속문화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열리고 있는《나도 울산사람 아잉교 - 수용과 포용의 도시, 울산》특별전은 이러한 고민이 녹아 있는 전시다. 1925년 인구 13만 명이었던 울산이 100년도 채 걸리지 않은 2017년, 119만 명의 대도시가 된 도시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일까? 이 과정에서 외부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울산사람들의 수용과 포용의 태도야 말로 지금 울산의 사회·문화·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어우러지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울산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수용과 포용의 도시, 울산’이라는 다소 홍보성 짙어 보이는 명제는 더 이상 접대성 멘트가 아닌 울산사람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주제로 확신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말하는 ‘울산사람’은 울산에 태어나서 자란 토박이뿐만 아니라 ‘울산에 사는 모두’를 오롯이 가리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울산이 아닌 곳에서 울산문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다. 나아가서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고 넘나드는 이야기는 이제 울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도시를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으로, 각자가 살아가는 도시의 해법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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