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 문화제로 격 낮춰진 ‘처용’
1,000년 역사 무색하게 떠넘겨져
종교적 편견 등 몰문화 의혹 지워야

 

김한태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처용을 천대해서는 안 된다. 그 이름으로 상징되는 처용문화제를 떠넘기니 마니 하는 논란을 멈추기 바란다. 
개운포에서 등장했다는 처용, 동해용왕 아들이라는 처용, 아라비아 상인이라는 처용, 천년 넘게 살아온 처용, 교과서에 나오는 처용…300편이 넘는 연구 논문의 주인공인 처용을 내치지  못해 안달이다. 
울산문화재단이 생겨난 뒤 생겨난 변고다. 지난 4월 울산시와 문화재단이 처용문화제 발전방향이란 토론회를 가진 직후 이 문화제를 남구청에 떠넘기려고 한다. 쉽게 말해 시 대표 문화제를 구청 문화제로 격을 낮춘다는 것이다. 처용이 등장한 개운포가 남구에 있다는 이유다. 남구 더러 처용아재를 데려가 같이 살든지 구박하든지 알아서 하란 조치다. 

막 생겨난 문화재단이 무슨 맘으로 이런 일을 도모했을까? 이 재단에 엊그제 부임한 박상언 대표가 주도적으로 처용방출 결의를 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여러 의혹이 생긴다. 
10년 전에도 처용에게 무당이라는 누명을 덮어씌워 굶겨 죽일 궁리를 한 적 있다. 울산 기독교 단체들이 처용문화제를 겨냥했던 사건이다. 무당인 처용을 믿고 따르는 무리를 지원한다며 세금을 주지 말도록 압박했다. 울산성시화(聖市化)운동본부 등 4개 단체가 으르렁거린 사건이었다.
처용문화제란 이름을 걸어준 이어령 박사를 꾸짖고, 박종해 당시 축제위원장을 사교숭배자로 몰아붙인 꼴이었다. 처용 박해사는 종교편향성을 꾸짖는 여론에 밀려 끝난 듯 싶었다. 그런데 다시 처용을 박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으니 그 배경이 의심스러운 거다. 처용아재는 15년 전에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적 있다.

2002년 심완구 시장 때 뮤지컬 ‘처용’을 만들었는데 시장이 바뀌자 아예 공연 '공자'도 입에 꺼내지 않았다. 본시 이 뮤지컬을 만든 까닭은 월드컵 울산유치와 문화의 세기에 보조를 맞춘 것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극작가 차범석, 연출가 임영웅이 맡았다.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처용에 대한 지난 1,000년 역사를 살펴보면, 신라 때는 향가란 노래로, 고려 때는 부적이란 그림으로, 조선 때는 궁중나례란 무용으로 전승됐다. 현대의 뮤지컬 처용은 노래+그림+무용+음악을 통틀은 새 형식의 창조였다. 

매년 관광이벤트로 하자며 ‘처용컴퍼니’란 법인까지 차렸지만 박맹우 시장이 들어선 뒤 중단됐다. 그 작품은 관 속에 들어갔고, 의상이며 세트들은 소각됐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종교적 편견, 전임자 흔적 지우기 등 온갖 억측이 오고갔다. 
그 뮤지컬을 매년매년 다듬고 다듬었다면 지금은 울산만의 콘텐츠로 롱런했을 수 있다. 늘 빈곤하다는 처용문화제의 핵심 콘텐츠로 주목을 끌 수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처용의 고향을 밝혀줄만한 사료가 발굴됐다. 아랍문화 전공인 한양대 이희수 교수가 ‘쿠시나메’란 고대 페르시아 문헌에서 아랍과 신라가 혈맹을 나눈 역사를 찾아냈다. 서울 정동극장이 시 소재를 낚아챘다. 음악극으로 만들어 경주와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오가며 공연하고 있다.
이런 저런 기회를 놓친 울산이 또 처용 방출을 도모하는 것은 의무방기며 문화지우기다.   
딴 도시들은 문화콘텐츠를 얻기 위해 저마다 홍길동과 심청의 무대라고 다투고, 또 경주는 경주대로 처용 소재를 선점하려고 안달이다. 울산은 얼마나 좋은 콘텐츠가 넘쳐서 처용을 홀대하는지 알 길이 없다. 

기이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도 나타난다.
지난 토요일 남구청에서 처용이 출현한 신화의 현장인 개운포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를 했다. ‘개운포 바로알기 심포지엄’이었다. 한쪽에서는 처용문화요소를 팽개치려는데, 한쪽에서는 처용문화지리를 탐구했다.

학자들이 새삼스레 개운포를 비춘 것은 7,000년 전 고래작살 발굴, 1,000년 전 처용설화 발상, 500년 전 조선시대 해군사령부 설치 등 유례없이 깊고 풍부한 스토리텔링 요소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처용이란 문화요소와 개운포란 문화거점은 울산시 문화역량을 총결집해 가꾸고 다듬을 대상인 것이다. 울산시와 문화재단은 처용문화제에 종교적 편견, 특정인의 독단, 몰문화에 대한 의혹이 아른거리지 않도록 유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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