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어린이책시민연대 공동대표

나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자유로워지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즐거움 보다 책을 읽으면 아는 것도 많아지고 뭔가 생각들이 논리정연 해져 남들보다 지적이거나 잘나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유용성중 나는 유용성에 더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책읽기가 의무로 다가왔고 나의 선택 보다는 누군가 권해주는 것에 신뢰를, 내 생각 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더 의존했다. 이런 내가 ‘한도서관 한책읽기’사업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중부도서관은 지회 모임 때 필요한 책을 빌리러 자주 들르는 곳이다. 이 외에 사실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기대감이 없기도 했는데 도서관이 선정한 ‘올해의 책’에 관해서는 좀 달랐다.

매년 5월경이 되면 도서관 입구에 ‘올해의 책’을 홍보하는 배너 판을 세워둔다. 그러면  배너 판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올해는 어떤 책이 선정 됐는지 훑어 봤다. 그런데 이번 중부도서관이 올해의 책 ‘푸른늑대의 파수꾼’을 ‘편의점 가는 기분’으로 재선정한 일을 겪으면서 울산 전역 공공도서관이 똑같은 책을 선정해서 홍보하고 운영하는 방식이 과연 올바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중부도서관은 ‘올해의 책’ 재선정 이유에는  ‘푸른늑대의 파수꾼’이 시국상 관련 있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위안부 이야기를 다루면 안 되는 것인가?

올해 4월 27일부터 열흘간 전주 일대에서 열린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58개국 229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올해 탄핵정국과 관련해 정치다큐가 큰 관심을 끌었는데 그 중에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와 박정희와 박사모 이야기를 다룬 김재환 감독의 ‘미스 프레지던트’도 상영했다. 양 극단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두 영화 중 어떤 영화를 선택할지는 관객의 취향과 관심, 호기심에 따라 다를 것이다. 박사모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나 여러 영화 중 나도  ‘미스 프레지던트’ 영화를 선택해서 볼 수 있다. 영화를 통해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도 있고 상대를 안다는 것은 나와 가치가 다른 박사모라 해서 배제해야 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과 내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내지르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협상력을 가지고 접근 할지 나를 살필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박정희 이야기라서 혹은 노무현 이야기라서 누군가의 잣대로 안 된다고 걸러내는 것은 너무 비상식적인 일이다. 도서관은 어떤가? 도서관은 정보의 보고이다. 어떤 정보든지 그것이 위안부 이야기라 하더라도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제공돼야 하며 어떤 외부의 검열에서도 자유로운 곳이어야 한다. 공공도서관이 검열에 휘둘렸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도서관 담당자나 이용자들이 도서관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가 한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인식부터 바꾸는 일, 도서관의 공공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장이 우선 마련돼야 할 것이며, 누군가 특정 책을 선정해서 시민들에게 주는 방식이 범하는 오류는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올해의 책 배너판 앞에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도서관이 선정한 책은 전문가 집단이 선정한 좋은 책, 괜찮은 정보로 다가왔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래서 읽다가 재미없으면 “재미없네” 하고 가뿐하게 던져버리면 그뿐인데, 내 느낌대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잘못 읽었나” 나를 의심하거나 탓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 나는 이런 양상을 보일까? 12년이라는 학교교육과정에서 내 생각을 존중받은 것 보다는 교사나 권위 있는 사람이 말해주는 정답이나 생각에 맞추고 그들의 기준에 잘하는지 못하는지 나를 맞추는 경험을 반복 했을 뿐 내 생각을 존중받은 경험은 드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제야 나는 책읽기에서 막힘없는 자유를 맛보고 싶다.

 특정집단이 특정 책을 선정해주는 방법 말고 어린이·청소년, 마을어른, 친구, 이웃, 교사, 사서 등 다양한 연령 또는 시민들이 추천해 특정집단의 힘이나 권위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책정보가 제공돼야 하며, 독자들의 선택과 해석이 존중받고 다양한 생각들이 만나  풍성해지고 내용이 깊어지는 경험을 맛보게 하는 곳이 공공도서관 이였으면 한다. 독서동아리를 활성화하고 그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선정하고 자치로 운영하는 형태로 개인의 선택과 다양한 삶이 존중받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위안부 이야기 또한 특정 책을 선정하는 방법 말고 특별기획전으로 위안부이야기를 다룬 여러 책을 소개하거나 사진전, 평화를 상징하는 영화상영, 할머니나 관계자를 초대하는 콘서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의 생각이 넓어지도록 도울 수도 있다. 지역도서관이 5년 이상 똑같은 방식으로 진행해 온 ‘한도서관 한책읽기’ 사업을 자체 평가나 시민들의 문제제기를 반영하여 다시 돌아보고 시민들의 선택과 생각을 존중하고 도서관의 공공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온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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