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발부터 범칙금 부과까지… 사법행위 위임해놓고 규정도 안 만든 경찰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경찰 내 무기계약직 직원들이 '범칙금 부과 업무'를 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현행법상 무기계약직은 사법권과 단속권이 없는 상황이지만 범칙금 부과 업무를 하다 보니 민원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무기계약직 경찰직원은 면허증 발급부터 범칙금 부과까지 각종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노컷뉴스
◇ '단속자 무기계약직 ○○○'에 "너 경찰이냐" 폭언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A 씨는 얼마 전 평소와 같이 범칙금 부과업무를 하다 민원인에게 폭언을 들었다. 해당민원인이 범칙금부과 대상임을 확인한 A 씨는 스티커를 발급했지만 민원인은 "너 공무원이냐, 경찰 불러와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주정차 위반 등 교통단속·조치업무' 등을 경찰공무원과 지자체공무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사법권이 없는 무기계약직 경찰직원에 대해선 별도로 권한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실제 무기계약직이 범칙금 부과 등 업무를 진행하다 논란을 빚은 것이다.

현재 경찰 내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민원실 등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운전자들의 범법영상, 블랙박스 영상 등을 확인해 범법행위를 판독한다. 이후 해당 운전자에게 사실확인서가 발송되면 조사를 통해 스티커를 발급한다. 
 

하지만 A 씨는 "현행법 상 아무런 권한이 명시돼있지 않다보니 민원인이 항의를 하는 경우에도 속수무책"이라며 "제복도 입지 않은 상태서 무기계약직이 범칙금을 부과하면 항의부터 들어온다"고 털어놓았다. 현행법에서도 단속자는 업무 동안에도 제복을 착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무기계약직들에겐 제공된 제복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 일선경찰서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B 씨는 "실랑이 과정에서 '이름이 뭐냐, 계급이 뭐냐' 항의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무기계약직이라 답하면 '당신이 뭔데 단속을 하냐'며 실랑이를 이어간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들은 경찰청 소속으로 고용돼 전국에서 2030명이 근무하며 각종 행정업무 등을 처리하고 있다. 경찰 내 거의 모든 부서에서 공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이들은 "경찰공무원과의 차별은 만연한데다 권한 밖의 업무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A 씨는 "민원인 상대나 감정노동 등 경찰공무원들이 기피하는 업무를 도맡아 하는데다 공무원 신분이 아님에도 범칙금 부과까지 하고 있다"며 "처우는 물론 신분보장도 안 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업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 지자체도 유사사례에 곤혹… 부랴부랴 업무변경
 
무기계약직이 직접 범법행위를 파악해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노컷뉴스)
무기계약직 단속 논란은 경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자체 역시 무기계약직에게 단속업무를 일임하다 민원인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부랴부랴 업무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충남 예산군에선 일부 운전자들이 무기계약·기간제근로자의 주차단속 권한 여부를 놓고 군청에 법적근거를 요구하는 등 집단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군청은 기간제근로자들을 단속업무가 아닌 공무원을 도와 단속업무를 보조하도록 방침을 바꿨다. 

지난해 제주특별자치도에서도 '무기계약근로자를 단속담당공무원으로 임명할 수 있냐'는 민원에 대해 "법령 상 공무원이 아닌 자에게 단속을 맡길 수 없다"는 답을 내놓았다. 무기계약직은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상 공무원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도 무기계약직·기간제 직원에 대해선 주정차 단속업무 보조요원으로만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현행법이 정비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 위임해놓고 규정조차 없는 경찰
 
(노컷뉴스 자료사진)
현재 경찰은 범칙금 부과업무를 사실상 무기계약직에게 위임한 상태지만 위임과 관련해서는 따로 내부규정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한정적으로 민원실 안에서 업무를 하기 때문에 경찰의 관리감독 하에 있어 문제가 없다"며 "위임 관련해 내부규정은 없지만 무기계약직이 하는 것은 후속 행정업무이지 단속업무라 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고 반박한다. 범법영상 등을 판독해 범칙금을 부과하는 것 자체가 '준 사법권' 행사인 단속행위라 사법권이 없는 무기계약직들이 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노영희 변호사는 "영상을 통해 범법행위를 확인하는 등 1차적 행위부터 통고처분까지 무기계약직이 사법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위임한다는 규정을 마련하지않고서 사무를 위임하는 것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창수 법인권사회연구소 대표는 "범칙금을 부과하며 개인정보 등을 취급하는 행위 자체를 무기계약직에게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들은 행정보조업무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속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로 국가가 권한을 부여한 자가 하는 것인데 무기계약직은 그런 권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미출 한국정책연구원장 역시 "비정규직 직원이 불특정 다수 국민을 상대로 준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범칙금을 부과하는 장소가 현장인지 사무실인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상기록을 통해 스티커를 발급하는 절차가 준사법권 행위라 법에 합당치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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