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시인
GCS국제클럽연구소장·연수원장

저녁이 이슥해서야 시작한 야간 산행, 일행은 목적지 신불산 고스락에 도착했다. 진한 암청색 밤하늘엔 구름 한 점 달지 않고 휘영청 보름달이 시원하게 솟아 있다. 딱히 불어오는 곳 구분 없이 삽상한 바람만 이는 산상에 유월의 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의 세계다. 신불평원 단조성터로 난 길은 달 빛 따라 오롯하다. 저 아래에서 오밀조밀 모여 언양 시가지를 밝히고 있는 도시 빛의 스펙트럼은 밤바다에 일렁이는 은결이다. 

일행 중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장으로 트럼펫을 곧잘 불었던 친구가 있는데 군대 가서 취침, 기상나팔수로 복무한 경력이 있는 친구다. 사실 그 친구와 몇몇은 가끔 정해진 삶의 영역에서 일탈하여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일을 삼는데, 오늘 밤은 백패킹(Backpacking)의 수단으로 신불산 산상에서 비박 할 참이다. 유월은 장마가 시작되는 계절이기에 맑은 날이 많지 않지만 날씨의 여건을 잘 살피어 별 보기 좋은 밤을 선택하면 오늘 같이 별보기 최적의 밤을 만난다. 특히 별들의 향연아래  ‘밤하늘의 트럼펫’연주란 감미롭고 감상적인 아닐 수 없다. 

침묵과 적막과 고요에 싸여 고스락 정상 표시석과 나란히 서서 트럼펫을 불기 시작하는 밴드 부장 포스는 그 자체가 밤하늘의 별이며 유월의 하늘에 떠도는 외롭고 슬픈 영혼들의 소리 인 것이다. “사랑하는 이여, 평안히 잠드소서/오늘밤 꿈에서나 그대를 만나 보리다/영원으로 가버린 그대여, 평안히 잠드소서.” 유월은 슬프고 숙연한 계절이다. 

전장에서 또는 항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넋을 달래어 고이 잠들게 하는 계절이다.  나라를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선대의 순국선열과 전란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지킴으로써 오늘의 조국을 있게 한 호국 영령들과 그리고 적시 적소에서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숨진 애국지사들에게 한 순간이라도 보답하고자 특정일을 정해 그 넋을 기리는 의식으로 우리는 진혼제와 진혼곡의 의미를 가진다.

진혼곡 연주 대명사로 오늘날까지 불리는 ‘Taps’는 군대에 갔다 온 남성이라면 훈련을 마치고 꿀잠에 들기 전 어머니 자장가 같은 취침 나팔소리를 추억하며 낭만에 젖어 볼 것이다. 전쟁 영화로 익숙한 이 트럼펫 소리, 병사 장례식에서 추모를 위해 어김없이 연주하는 진혼곡으로 이 곡은 소등나팔이란 뜻도 있으며  동시에 영결나팔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 전사자의 영혼을 달래어 명복을 비는 진혼곡(Requiem)이 됐다. 단 24개 음표로 구성된 곡으로 단 한명의 군악병이 연주하는 전통을 잇고 있는 ‘Taps’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1862년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의 중대장 엘리콤 대위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숲속 에서 신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나이어린 남군병사가 피투성이가 돼 죽어가고 있었다. 비록 남북이 전쟁 중이었으나 엘리콤은 남군병사를 살리기로 했지만 복부에 심각한 총상을 입었던 병사는 애석하게도 죽고 만다. 병사가 죽은 후, 엘리콤 대위는 랜턴을 밝혀 병사의 얼굴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던 아들은 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남군에 입대한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죽은 아들 호주머니를 살펴보니 구겨진 종이가 있었는데 그 종이엔 악보가 그려져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엘리콤은 상관에게 자식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달라며 군악대 지원을 요청했지만 적군 장례에 군악대까지 동원할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다만 상관은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서 단 한명의 군악병만을 허락했다. 이에 엘리콤 대위는 나팔수 한 사람에게 아들이 작곡한 악보를 건네주며 불어달라고 했다. 숙연하게 장례를 치른 후 이 악보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진혼곡 뿐 아니라 취침나팔로 북·남군을 가리지 않고 매일 밤마다 연주됐다. 아무튼 이 곡은 곧 모든 군에서 널리 쓰이게 됐고, 1891년엔 미국 군 장례식에 공식 의전행사 음악으로 채택되기도 했으며 그것이 우리나라 군에서도 진혼곡으로 쓰이기도 했다. ‘Taps’는 이탈리아 트럼펫 명연주자 니니 로소(Nini Rosso)가 재즈풍으로 연주한 ‘il Silenzio(밤하늘의 트럼펫)’ 곡으로 진화해 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트럼펫 연주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리우기도 한다. 

6월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는 가슴 아픈 역사를 참 많이 가지고 있다. 어렵게 독립을 해 1948년 정부를 세웠지만 2년도 지나지 않아 북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벌어지고 이 전쟁으로 사망한 국군의 수가 무려 40만이 넘었으며, 100만 명이 넘게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불구가 됐고, 가족을 잃었다. 특히 유월에는 슬픈 날들과 사연들이 많다. 그로인해 희생한 분들을 우리는 어찌 잊을 것인가. 

오월에 고결한 생명으로 피어난 장미가 망종(芒種 6월6일 현충일)의 유월을 맞아 젊은 선혈로 활짝 피어났지만 그 정열을 못 다하고 조국을 위해 이름 없는 골짜기로, 황량한 들판으로 산화한 ‘붉은 장미’의 넋들을 위로하고 잊지 않기 위해, 신불산 산상에서 그들이 머물고 있을 법한 천상을 향해 ‘진혼의 트럼펫’을 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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