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의 고장’ 울산 조명 특별전]

관아 건물·산·마을 이름 등에 표현
신라말 박윤웅이 학 설화 효시
동헌 ‘일학헌’·‘반학헌’ 편액 걸려
정몽주 등 시인묵객이 남긴 ‘鶴 문학’
각종 서화·공예품에도 학 등장
대곡박물관, 9월까지 4개 주제 전시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학성, 학이 날던 고을 울산’특별전은 지역사와 지명, 문학 속에 반영된 울산의 학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신형석 관장이 관람객들에게 울산의 학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울산대곡박물관 제공

‘鶴城(학성), 학이 날던 고을 울산’ 울산대곡박물관이 광역시 승격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전의 제목이다. 울산의 지명과 문헌 기록에서 찾아낸 학과 관련된 문화를 조명했다. 오는 9월 24일까지 진행되는 특별전은 학의 고장 울산의 또 다른 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울산대곡박물관은 울산시민들의 청정식수원인 대곡댐 수몰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구들을 전시하는 곳이다. 위치도 대곡댐이 바라다 보이는 울주군 두동면 대곡천 인근이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특별전을 둘러본 후 천전리 각석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까지 역사문화길도 탐방하면 좋을 듯.

◆ 4개 주제로 울산의 학 문화 조명

이번 특별전은 1부 ‘울산, 학 고을이 되다’, 2부 ‘울산, 학 문화를 잇다’, 3부 ‘학을 이야기하다’, 프롤로그 ‘학 문화를 주목하며’ 등 4개의 주제로 엮었다.

‘울산, 학 고을이 되다’에서는 역사 속 울산과 학의 연관성을 찾는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학과  관련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은 예로부터 학의 고장인 학성(鶴城)으로 불렸을 만큼 학과의 관련성이 높다. 관아의 건물, 산 이름, 마을 이름, 성씨의 본관 등에 학이 들어가 있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반학헌’ 편액이 걸려 있는 울산의 옛 관아 동헌 모습. 울산대곡박물관 제공

울산의 학과 관련된 설화는 신라 말의 지방호족 박윤웅에 의해서 생겨났다. 그는 신학성(神鶴城) 장군이라 불렸다. 901년(효공왕 5) 쌍학(雙鶴)이 온통 금으로 된 신상(神像)을 물고 계변성 신두산에서 울었다고 한다. 박윤웅은 고려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으며, 흥려부(울산)의 지배자가 되었다. 

‘학성(鶴城)’이란 별호(別號)가 생긴 것은 고려 성종 때(960~997년)다. 성종은 말년인 997년(성종16년) 울산에 행차했다. 그는 태화루에 올라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서로 시를 주고 받았으며, 바다 속에서 큰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고 전해진다.

◆ 동헌의 옛 이름에서 찾은 학 이야기

‘울산, 학 문화를 잇다’라는 주제의 2부에는 조선시대 관아에 표현된 학, 울산과 관련된 주요 한시와 석각 속에 등장하는 학을 조명했다. 
조선시대 울산동헌은 일학헌(一鶴軒), 반학헌(伴鶴軒)이라 불렸다. 

일학헌의 사연은 애틋하다. 1680년(숙종6) 울산부사로 부임한 김수오는 이듬해 내동헌을 지었다. 김수오는 아들에게 편액 글씨를  한번 써 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이 여러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던 중 김수오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15년 후 그의 아들(김호)도 울산부사가 되어 동헌에 머물게 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한 자책감에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울주군 두동면 대곡천 변에 세워진 울산대곡박물관 전경. 울산대곡박물관 제공

아들은 동헌의 이름을 ‘일학헌’으로 짓고 편액을 써서 걸었다. 일학헌은 울산의 별호인 학성을 취하고, 송나라때 조열도(趙閱道)가 촉으로 부임할 때 학 한 마리를 싣고 갔다는 고사를 차용했다고 한다. 아들은 조열도처럼 청렴하고 강직한 관리가 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는 부임한지 한 달 만에 사망하고 만다.

반학헌은 1763년(영조39) 울산부사로 부임한 홍익대가 일학헌을 중창한 후 붙인 이름이다. 반학(伴鶴)은 학과 짝을 이룬다는 뜻이다. 학은 학성의 학과 조열도의 일 학을 그대로 차용했을 것이다. 반학헌의 기문에는 ‘반학헌’은 울산부사가 다스리는 곳이다. 뒤편 백양산이 주봉이 되는데 그 형상이 마치 춤추는 학이 날개를 펼치는 듯하다. 앞쪽엔 태화강이 가로지른 띠 같은 물이 되어 배가 그림 속에 오가는데...’라고 쓰여 있다. 지금 울산 동헌에는 ‘반학헌’ 편액이 걸려있다.

학은 관아의 부속건물의 명칭에도 있다. 동헌의 정문 누각이 가학루(駕鶴樓)다. 이는 계변천신이 학을 타고 신두산에 내려왔다는 설화와 관련이 있다.

옛 울산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울산객사의 별호도 학이 붙은 학성관(鶴城館)이다. 울산객사는 울산 고을에서 가장 격조가 높은 건물로 공무 출장 온 관리들의 숙소, 유생들을 교육하는 장소였다. 

울산의 옛 관아 동헌 건물에 걸린 편액 ‘반학헌’. 울산대곡박물관 제공

◆ 정몽주를 비롯 많은 시인묵객들이 학 문학 남겨

학은 울산지역에서 쓰여진 많은 한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곡박물관 하류의 반구대 일원에서도 학은 문학으로 피어났다.

1375년(우왕 1) 언양으로 귀양 왔던 포은 정몽주는 반구대에서 시름을 달래며 시를 지었다. 
<포은집>에는 선생이 중구일(重九日·음력 9월9일)에 반구대에 올라 읊은 한시가 나온다. 

나그네의 마음이 오늘 더욱 쓸쓸한데 
장기 어린 바닷가에서 물에 나아가고 산에 오르네. 
뱃속에는 글이 있어서 문득 나라를 그르쳤지만 
주머니에는 약이 없으니 나이를 늘릴 수 있으랴? 
용은 저무는 한 해가 근심스러워 깊은 골짜기에 숨고 
학은 갠 가을이 기꺼워 푸른 하늘로 오르네. 
손으로 누런 국화를 꺾고 잠시 그저 한 번 취하는데 
옥 같은 님은 구름과 안개 너머에 있네.     (번역 성범중) 

  조선시대에도 많은 관리와 시인묵객이 반구대를 찾아와 경치를 감상하고 시를 지었다. 
반구대는 정몽주의 자취가 있다고 하여 포은대라 불렸고, 이 바위면에 ‘圃隱臺(포은대)’ 글자를 새겼다. 

운암 최신기는 1713년(숙종 39) 반구대 바로 맞은편에 집청정(반구정)을 지었다. 그가 반구대 바위면에 ‘盤龜(반구)’ 글자와 학 그림을 새겼다. 집청정 맞은 편 바위에 새겨진 고고한 학 그림은 3백년이 넘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태화강 내오산(만회정 인근)에도 반구대 학 그림과 형태가 거의 같은 학 그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그림은 명정천 확장공사 때 없어지고 말았다. 특별전에는 두 곳의 학 그림을 함께 전시해 놓았다. 근대까지 반구대·집청정을 찾았던 많은 시인들이 지은 시를 필사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집청정시집(集淸亭詩集)>이다. 이 시집에 실린 한시 406수 가운데 80여 수에 학이 표현되어 있다. 

울산 학춤 복식.울산대곡박물관 제공

◆ 학과 관련된 문헌 속 이야기도 함께 전시

3부 ‘학을 이야기하다’ 는 각종 서화나 공예품 속의 학을 조명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울산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화조도 병풍 중 학이 등장하는 폭이다. 대나무를 배경으로 고고한 학의 기품이 살아있는 그림이다.

흥미로운 기록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 조상들이 학을 기르기도 하고, 나아가 학에게 춤을 가르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학이 일본과의 외교에도 활용됐다는 기록도 전시해 놓았다. 조선 세종부터 일본에 10여 차례에 걸쳐 28마리의 학을 보냈다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이외에도 학 깃으로 만든 부채, 박윤웅을 시조로 하는 ‘울산박씨족보’, 청자운학무늬대접, 당월리 연자도 출토 청자운학무늬매병, 청대 권상일의 문집 ‘청대집’ ‘울산부선생안’, 학성이씨 충숙공 이예에 관한 기록인 ‘학파실기’, 동헌·가학루·학성관 관련 문헌과 사진자료, 화조도 병풍, 단학흉배, 십장생도, 울산학춤 복식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학은 한 때 울산의 시조(市鳥)였다. 1960년대까지 태화강으로 찾아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더 이상 학이 찾아오지 않는다. 특별전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울산에 학이 다시 찾아오고, 선조들이 꽃 피웠던 학 문화가 시민들의 가슴 속에서 훨훨 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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