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각도 촬영 영상으로 360도 영상 구현…시청자 시각 따라 화면 변화
철저한 준비로 음향장비·출연진 컨디션 등 따른 실패확률 줄일 수 있어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닉 연주회 81만명이 동시에 즐기기도
예술의전당, 초고화질 영상 무료 보급 ‘싹 온 스크린’ 관객 20만 돌파
울산 문화계, 변화 시도 전무…대형공연 드물고 지원 시스템 구축 안돼

 

4차 산업혁명 기수인 증강·가상현실과 공연예술이 만난다면 내 집 안방에서 45만 원짜리 공연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펼쳐진다. 관객들이 가상현실로 구현된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예술의전당 ‘싹 온 스크린’ VR체험관에서 VR 기기를 통해 공연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세계적인 베를린 필하모닉 군단의 황홀한 연주가 눈앞에서 펼쳐진다. 하이 옥타브를 치는 소프라노의 생생한 노랫소리는 덤이다. 또 다른 장소에서 선보이고 있는 브로드웨이 특별공연도 마찬가지다. 스크린에서나 볼법한 유명배우가 코앞까지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청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전부 ‘가상(假想)’이라면? 지금 앉아 있는 곳이 독일과 미국의 한 공연장이 아닐 수도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의 기수인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이하 AR)과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이하 VR)이 그 역할을 하며 공연예술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는 우리의 눈이 닫히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보고 느낄 수 있다. 45만 원짜리 클래식 공연을 내 집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편집자 주>
 

◆증강·가상현실이 ‘공연예술’과 만난다면

AR은 눈앞의 현실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를 실시간으로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 VR은 현실과 무관한 가상공간을 눈앞에 보여줘, 마치 그 공간에 있는 것과 같은 체험을 제공하는 기술이다.

21일 IT업계에 따르면 가장 주목받고 있는 VR 기술은 360도 영상이다. 다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이어 붙여, 시청자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화면이 돌아가며 변한다. 이런 영상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대중적인 플랫폼을 통해 비교적 쉽게 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들이 공연예술과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에 앞서 문화예술의 많은 분야들 중에 왜 ‘공연’에만 특화시키는 것인지는 그 특성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공연’은 타 문화예술 분야인 전시나 문학 등과 비교해 일정의 값을 지불해야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출자가 기획했다거나 화려한 출연진과 세트 등으로 구성된 공연일 경우 티켓 한 장당 수십만 원을 넘어가는 것은 기본이다.

특히, 대·중·소공연장 할 것 없이 장소의 규모, 음향장비, 객석 환경 등 외부적 환경에 따라 공연 컨디션이 대부분 결정된다. 수십 년 경력의 소프라노가 야심차게 준비한 단독 무대도 그날 스피커 상태가 불량이면 청중들에겐 절반의 감동만 전달된다.

반대로 무대에 오르는 신인 연기자가 실전 경험이 부족하거나 베테랑 가수가 목이 잠겨버리는 등의 이유로도 공연의 성패를 좌지우지한다.

따라서 음악, 무용, 연극 등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야 하는 공연은 적지 않은 리스크를 안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 중 하나인 것이다. 그래서 이 같은 AR·VR의 가상세계가 공연문화와의 만남은 필수적일 수 있다.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기념연주회 360도 실시간 중계 영상 유튜브 캡처 화면.

◆동네 공연장이 사라진다?

‘4차 산업혁명과 공연예술의 만남’. 눈앞에 펼쳐지는 VR 공연장으로 동네의 실제 공연장이 사라질 수도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공연 콘텐츠는 다양한 실패요인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해결책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제시된다면, 이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연관계자에 따르면 클래식 콘서트와 연극, 발레 등 공연예술을 스크린으로 보는 시대가 이미 활짝 열렸다.

올해 초 열린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홀 리모델링 개관 기념 연주회는 최대 수용규모 2,100명을 넘은 관객 81만 명이 동시에 즐겼다고 한다.

이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과 유튜브의 기술 덕분. 이들은 사전에 공연장과 협의해 고화질 VR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영상 장치를 공연장 곳곳에 설치했다. 덕분에 전 세계 클래식 마니아들은 엘프필하모니홀까지 직접 올 필요 없이 집에서 편히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감상했다.

국내에서도 이미 시작되고 있다. 네이버·다음 등 국내 포털들은 클래식 공연 및 연극 무대를 온라인에서 그대로 제공한다.

직장인 이모(25·울산 울주군) 씨는 최근 오스트리아 빈소년합창단 공연을 컴퓨터로 관람했다. 이 씨는 “이날 현장 관객은 없었지만 네이버 ‘브이 라이브(V LIVE)’ 앱에는 네티즌 관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며 “티켓만 열렸다 하면 매진되는 인기 공연들을 비싸게 티켓을 구입하지 않고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편리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싹 온 스크린’ 리허설 촬영 하는 모습.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특히, 예술의전당은 지난 2013년부터 수준 높은 국내 공연을 4K 초고화질(UHD) 영상물로 제작해 대중에 무료로 보급하는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누적 관객 20만 명을 돌파하자 이를 기념키 위해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양일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앙상블 디토의 10주년 콘서트 <디토 페스티벌>을 실황중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거 공업도시에서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울산의 ‘4차 산업혁명과 공연예술의 만남’. 그 청사진은 어디까지 그려지고 있을까.

사실상 울산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만큼의 다양한 시도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는 게 지역문화예술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울산에는 울산문화예술회관, 북구문화예술회관, 중구문화의전당, 현대예술관과 몇 개의 소극장들이 있지만 이를 접해볼 기회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무엇보다 타 도시에 비해 해외 기업들과 기술 협업한 대형공연 등이 자주 마련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또, 일각에서는 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지원 시스템 구축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울산의 한 공연장에 근무하고 있는 A씨는 “지역에서는 소극장 공연이 대부분이고, 또 이를 바라보는 반신반의하는 시선도 적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구현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된다할지라도 이런 콘텐츠로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실험적인 운영을 할 만한 기반 등 시스템이 없는 상태라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앙상블 디토의 10주년 콘서트가 야외에서 대형스크린으로 실황 중계되고 있다. 사진제공= 예술의전당

■4차 산업혁명 기술과 공연예술의 만남 적절성에 관한 찬반 인터뷰

공연단 순례 등 사회적 비용 절감
중소도시·군부대 문화 격차 해소

“찬성” 문화콘텐츠학부 대학원생 A씨

공연단이 정기 순례할 필요 없이 VR기기만 정기적으로 시나 도 단위로 돌리면 사회적 비용절감이 될 수도 있다. 어차피 공연장을 찾아다닐 만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직접 듣는 것과는 다르다면서 찾아갈 테니 말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그에 따라 여러 환경들도 조금씩 변화해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런 시도들은 공익 차원에서 탁월하다. 지방 중소도시와 군부대까지 문화 소외 지역의 격차 해소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한 번쯤 공연장에 가서 생생하게 즐기고 싶지만, 여러 의미로 여유가 없다는 게 슬프기도 하다. 소공연장은 그나마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연을 보기 위해선 큰돈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격 문제를 떠나서, 이런 문화를 향유할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같은 현실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서 나온 대안일 수도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면이 있다.

현장 생생함·친밀감 느낄 수 없어
영상·음향 등 섬세한 면 못 잡아내

“반대” 지역 소극장 연출가 K씨

직접 듣는 것과 스피커를 통해서 듣는 건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왕이면 공연을 보러가는 것으로 대신할 것 같다.

특히, 공연은 생생함과 친밀감 등의 만족도가 중요한 예술인데 이런 점에서 불만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상으로 만나는 라이브는 아무래도 이질감이 있을 것이며, 섬세한 면들을 잡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이 콘텐츠화 되버리면 배우들의 발전은 물론 문화발전은 전혀 없을 것이다.

문화는 현장 중심이어야 한다. 연주하는 사람과 공연하는 사람 그리고 그들을 보고 문화를 즐기기 위해 현장을 찾는 관객들의 하모니가 이뤄지는 것이 문화예술의 기본이다. 어릴 때부터 공연장을 자주 찾은 아이들이 커서도 그 문화를 계속 향유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이 4차 산업혁명의 기술로 만들어낸 현실들로 간접 체험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직접 보고 듣고 즐기지 않으면 인간의 오감을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육적인 차원이나 이벤트성으로 간단하게 체험용으로는 괜찮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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