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다가가는 대통령 부인을 계속 기대하며
'사진으로 이렇게 다시 본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활약한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유한 계급론'(1899)에서 "상류계급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가격과 관계없이 소비를 행한다"는 이른바 '베블렌 효과'를 설파했습니다.

수요와 가격은 반비례한다는 고전경제학 이론과는 배치되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괴짜 이론' 취급을 받았으나, 오늘날 '명품족'의 등장이라든가, 유통업체의 'VIP 마케팅'을 미리 예견한 듯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스타인 베블렌

지난 21일(어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사상 유례없는 수해를 입은 충북 청주를 찾아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고 현장을 둘러보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정치인들 일정입니다만, 김 여사는 고무장갑과 장화를 착용하고 쓰레기를 담은 마대자루를 직접 옮기는 등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고무장갑과 장화 신고 자루 멘 김 여사

이전에 여러 대통령 부인들이 민생 현장을 찾아 구호물품을 전달한 적은 몇 차례 있었지만, 주민들의 복구 작업에 직접 참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어쨌든 이전 사례와 '다르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날 복구 작업에서 김 여사에게 남다른 점은 한 가지 더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애로를 청취하는 장면에서 왼쪽 맨 손가락에 반창고가 붙은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후 고무장갑을 낀 그 손의 두 손가락을 밴딩한(묶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창고 붙은 손가락과 묶은 손가락의 김 여사

사연을 알아보니, 며칠 전 김여사는 일상생활에서 손가락을 다쳤다고 합니다. 예정대로 이날 방문행사에 나선 김 여사는 상처 악화 방지를 위해 두 손가락을 묶은 채 작업에 임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불을 말리고 가재도구를 씻고 짐을 옮기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일정 시간 지속한 것으로 보아 '전시성 과시'는 아닌 듯합니다.

이불 말리는 김 여사

시계를 돌려봅니다.

지난 5월 13일, 취임식 며칠 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에서 청와대 관저로 이사하던 날입니다. 한 60대 여성이 빌라 단지 입구와 뒷동산을 오가며 "국토부의 정경유착을 해결해 달라. 배가 고프다.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었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후 과정은 잘 알려진 대로, 민원인의 하소연을 들어주던 김 여사는 "몰라. 자세한 얘기는 모르겠고, 배고프다는 얘기 듣고서는…. 나도 밥 먹으려고 했는데 들어가서 라면 하나 끓여 드세요"라며 손을 덥석 잡고 같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김 여사의 이삿날과 민원인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이던 지난달 30일, 김 여사는 전직 주한 미국대사 부인과 주한 미군 부인들 모임인 '서울-워싱턴 여성협회'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허버드 전 대사 부인이 김 여사가 입고 있던 한복을 보며 무척 아름답다고 칭찬하자 김 여사는 즉석에서 장옷을 벗어 선물로 건네는 '돌발행동'으로 참석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허버드 부인이게 옷 보여주는 김 여사

지난 12일에는 김 여사를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온 전북 군산 초교생들의 학교를 방문해 함께 노래 부르고 대화하는 등 잠시나마 동심의 눈높이에 맞추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학생들과 대화는 김정숙

우리 사회에서 '김 여사'라는 호칭은 호의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보통 '과시'나 '사치', '허영'에 물든 인물로 개그 코너나 우스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적어도 취임 후 지금까지 보여준 '문 대통령 부인 김 여사'의 행보는 이와는 분명 다릅니다.

'대통령 부인'의 지위는 본인이 피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한 명의 '정치인'입니다. 한발이라도 더 시민과 이웃에게 다가가는 지금의 모습처럼, '정치의 영역'에 자리 잡은 '김 여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벗어나 '정치성의 영역', 즉 '전시'나 '과시'를 우선순위에 두는 행보에 빠진다면 그건 바로 또 다른 '베블렌 효과'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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