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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칼럼] ‘선의와 진정성 없으면 예술이고 인생이고 실패다’ (故 정기홍 화백을 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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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 승인 2017.07.30 22:30
  • 댓글 0
김한태
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울산 미술계 어른을 모신 마지막 인물이면서 후배에게 버림받은 마지막 인물이 누군지 알겠소?”

2년전 강동 바닷가에서 한 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던 정기홍 화백이 그저께 이승을 하직했다. 향년 63세. 몇 해 전 설암을 앓더니 뿌리를 뽑지 못했다. 선배를 잘 모셨고 후배에게 설움 받은 이는 정 화백 자신이었다.

강동 바닷물이 노을에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그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 화백은 스스로 울산 근대미술계의 2세대라 했다. 1세대는 천재동 이달우 김홍명 등을 들었다. 2세대는 심수구 홍맹곤 이채국 등과 자신이 포함된다고 했다. 그는 선배 세대가 작품전을 하면 액자를 걸 못걸이를 만드는 것에서 작품을 실어 나르는 일까지 정성을 다했다. 이응노 모성수 박생광 등 경향의 원로 작가들이 울산에서 전시회를 열면 자잘한 일도 맡아줬다.

척박한 울산 미술계를 개척하기 위해 정성을 다했다. 이채국 홍맹곤과 화랑 ‘앙띠끄’를 운영했고, 경영난을 겪던 ‘공간 화랑’을 인수했다. 청년작가회와 여류작가회를 결성하는데 앞 장 서기도 했다.

울산이 한반도 미술의 원형을 지닌 고을이란 각성이 퍼지기 전의 일이었고, 시립미술관을 짓자는 열의가 피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2001년에는 심완구 시장의 뜻에 따라 조각공원을 조성하려다가 중도에 좌절했다. 심 시장이 30억원이란 예산을 준비했는데, 시장임기가 끝나면서 물거품이 됐다. 지방정권이 교체될 즈음 이 사업에서 소외된 일부 예술인들의 방해를 받았다고 술회했다.

울산 예술을 바꿔보려고 무던 애를 쓰던 그는 예총회장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가 마음 아프게 생각한 것은, 예총회장이 안된 것 보다 자신이 생각한 문예진흥 구상이 사장되는 것이었다. 

그 뒤부터 그는 뜸해졌다. 시내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걸려오는 전화도 거의 받지 않는다고 했다.

재작년 겨울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제법 많은 자료를 난로에 집어넣고 있었다. 단지 불쏘시개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싫어졌다고 했다. 각종 행사에서 모아둔 전시회 목록과 같은 자료였다. 조각공원 건립계획서 같은 것은 태우지 말라고 부탁한 바 있는데, 후일은 어찌됐는지 알 수 없다.

그런 그가 산속 요양원에 갔다는 소식을 지난해 들었다. 간혹 그의 작업장이 있는 범서읍 망성리에 혼자 들리곤 했다. 그의 조각품은 대부분 만상이 움트는 모습, 즉 ‘소생(蘇生)’에 이미지가 맞춰져 있다. 언 땅을 헤집고 올라오는 새 순, 아스팔트같이 불모의 땅을 쪼개고 피어난 맹아, 그리고 어린 꽃 봉오리 같은 것이었다. 

그의 작품은 봉오리 부분이 깨진 것이 많다. 떨어진 것을 붙인 것도 있다. 주로 이사 다니면서 입은 상처다. 상하기 쉽고 꺾이기 쉬운 새싹을 조각 대상으로 삼았으니 불가피한 결과였을 것이다. 나는 주인 없는 전시실에서 사진을 찍어 그 주인에게 카톡으로 보내곤 했다. 

지난 주 그의 작업장을 지날 때 풀 베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워 내려갔더니 낯선 분이 풀을 베고 있었다. 멀리 떠날 분의 하직 인사를 위해 정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별이 가까웠음을 알았다. 직접 연락을 못하고 가까운 분에게 안부를 물어보며 이차저차 시간을 미루는 사이 타계 소식을 들었다.

빈소에 들린 뒤 무룡산 고개를 넘어 강동바다로 향했다. 구름이 짙었고 가는 비가 내렸다. 정자항 남북 방파제에는 각각 큰 귀신고래 조각상이 있다. 정 화백이 7년전 해양수산부 용역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어스럼이 내린 방파제 위에서는 신파극 ‘갯마을’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 화백의 기백을 존중하고 따르던 연극인 박용하씨가 분주히 오고갔다. 바다와 바람이 춤과 노래로 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음향을 피해 방파제 끝으로 걸어갔다. 양쪽에 휘어진 가로등이 고래 갈비뼈와 같았다.
얼마 전 이 부근에서 정 화백이 한 말을 떠올렸다.

“나는 울산에 와서 울산예술 1세대와 2세대 사이에 나름대로 열정을 다했소. 내가 바라는 건 선의와 진정성이지요.” 

정기홍 화백이 울산 땅에 몸을 던져 틔운 싹은 선의(Goodness)와 진정성(Sincerity)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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