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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세이 칼럼] 쓰레기 속의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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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7.08.02 22:30
  • 댓글 0

귀양살이 정약용 ‘하피첩(霞帔帖) 
폐지 수레 실려 사라질 뻔했다가
발견돼 7억5,000만원 낙찰보관중

5년여만에 주필실 책·자료 정리
저장 중독(?) 상태에서 모은자료
아쉬움 남기고 쓰레기처럼 사라져

김병길 주필

부독오천권서(不讀五千卷書) 무득입차실(毋得入此室). ‘5,000권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이 방에 들어올 수 없다.’ 수(隋) 나라 때 최표(崔儦)가 한 말이다.

재야 역학자 조용헌씨는 오래 전 서울의 어느 신문사 주필방을 방문한 뒤 ‘이 세상에 주필(主筆)이 있으면 객필(客筆)도 있기 마련’ 이라면서 자신은 ‘객필’이라 했다. 객필이 사무실도 없이 떠돌아 다니면서 쓰는 필(筆) 이라면, 주필은 고정된 자리가 있다고 했다.

필자는 지난주 사옥을 공업탑 로터리 쪽으로 이전한 후 5년여 만에 주필실을 정리했다. 책과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정글같았던 방이 정리됐다. 섭섭했지만 한 트럭 가까운 책과 신문스크랩등 각종자료 상당량과 이별해야 했다. 어쩌면 그동안 ‘저장 중독(?)’에 사로잡혀 있었지 않았나 싶다.

어느 기자가 정리장면을 인터넷에 올리는 바람에 한 때 ‘신문사를 퇴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인들의 물음이 잇달아 오해를 부르기도 했다. 천년만년 글을 쓸 것처럼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모아온 책과 각종 자료들은 진작 정리 되지 않아 마냥 그 속에 파묻혀 살아온 것만 같다. ‘정리되지 않은 자료는 자료가 아니다’는 말을 염두에 두고도 차일피일 미뤄온 것이 결국은 귀한 자료들을 대량의 쓰레기 처리처럼 버릴 수밖에 없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때 맞춰 신문에 게재된 ‘쓰레기와 보물’이란 기사(조선일보 2017년 8월 1일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1800년 천주교 박해 사건에 휘말려 장장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게된 정약용의 ‘하피첩(霞帔帖)’은 2004년 수원에서 폐지 수레에 실려 사라질 뻔 했다가 극적으로 발견돼 보물로 지정됐다.

귀양살이 10년째 되던 해 정약용의 부인 홍씨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시집 올 때 혼례복으로 가져온 붉은치마를 유배지로 보냈다. 정약용은 그 치마를 여러 폭으로 마름질해 조그마한 서첩 네개를 만들었다. 서첩에는 당시 18세, 15세 두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을 써 넣었다. 

자식들을 향한 정약용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하피첩은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했는데 6·25전쟁 통에 정약용의 종손이 수원역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2004년 수원의 폐지 수레에 실려 있던 것을 한 남자가 발견해 보관하다가 2006년 한 방송프로그램에 감정을 의뢰했다. 그 책이 ‘하피첩’이라는 사실을 알아본 감정위원들은 감정가 1억원을 매겼다. 2015년 경매에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7억5,000만원에 낙찰받아 잘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쓰레기 뭉치에서 우리나라의 보물이 아닌 다른 나라의 소중한 보물을 발견한 적도 있다. 2003년 경주의 양동마을에서는 현재 세계에 하나뿐인 원나라의 법전이 라면 상자에서 발견됐다. 그 사연은 1994년 경주 손씨 종손 손동만이 집안의 책자와 문서를 정리하면서 너덜너덜한 대나무 종이로 된 중국 책을 쓸모없는 물건이라 여겨 나중에 버릴 생각으로 라면 상자에 넣어 창고 한편에 뒀다. 손동만이 1996년 세상을 떠나자 아들 손성훈이 문헌을 관리했다.

그 사이 종가 건물이 보물로 지정된 후 어느날 문화재청에서 건물을 수리하러 왔다. 손성훈은 아버지가 치워뒀던 라면 상자를 버리려 했다. 그때 한국학 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안승준 연구원이 수습, 몇달이 지난 뒤 원나라 법률서적 ‘지정조격(至正條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1271년∼1368년 사이 중국을 지배했던 몽골 왕조 때의 법전으로 중국에서도 사라진 지정조격이 한국에서 발견되자 전 세계 학계가 흥분했다. 하마터면 몽골이나 중국,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문화재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질 뻔했다. 2010년 3월에는 남바린 엥흐바야르 전 몽골 대통령 등 몽골 방문단이 이 법전을 보러 우리나라를 찾았다. 

일본 정리의 신(神) 사하라 미와는 “정리의 필요성을 느낀다면 목표를 확실히 세우고,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쓰레기 처럼 사라진 그동안의 ‘나의 보물들’에게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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