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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칼럼] 古宅(고택)이 가지는 역사와 문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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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근 시인· GCS 국제클럽 연구소장·연수원장
  • 승인 2017.08.10 22:30
  • 댓글 0
이병근 시인
GCS 국제클럽 연구소장·연수원장

김사원은 퇴계 이황의 제자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그는 자신의 두 동생 사형과 사정을 그의 고향 화왕산성에 보내 왜군을 무찌르도록 했다. 만취당은 다소 낡아있어 당에 오르면 혹 마루가 무너질까봐 두려울 정도다. 그러나 건물은 다소 낡았지만 깐깐한 선비처럼 당당한 기품은 그대로 남아 있다. 

‘만취당’(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이라 전해진다)을 향해 들어서는 길은 여느 고택과 종택에 들어서는 길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지막한 담장너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토담골목 바람결을 타고 책을 읽고 시를 읊조리는 선비의 낭랑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의성은 곳곳이 종택이고 고택이며 마을마다 서원이고 향교가 있다. 수많은 종택과 고택, 그리고 향교와 서원의 건축물이 지닌 의미나 건축양식과 풍수지리설은 이 고장의 가치를 더 높이는 품격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성의 수 많은 고택이나 종택들이 여타(타 지방)의 볼거리와 다른 것은 사람의 온기가 떠나고 대신 스치는 바람과 관람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만이 잠시 머무는, ‘전시물’로써 적막감만 감도는 박제 된 건축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곳에는 여전히 아버지, 할아버지 그 윗대 조상들이 집을 짓고 살았던 것처럼 지금도 후손들의 숨결이 생생히 숨 쉬는 온기 가득한 생활의 터전이며, 일상 속에서 온고이지신의 뜻을 실천하는 후손들의 삶이 지속되는 ‘삶의 현장’이자 살아있는 ‘교육의 산실’이다.

만취당은 조선 전기 문신이었던 만취당 김사원이 1582년부터 3년여에 걸쳐 완공한 건물이다. 민가 건물로써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것으로는 몇 안 되는 건물이다. ‘만취당’ 안에 걸려 있는 편액의 글씨는 이 집주인이었던 김사원과 성균관 동문인 한석봉의 작품이다. 삼복더위에 마을을 돌아다니느라 땀에 흠뻑 젖은 옷을 만취당에 들어서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가뿐하게 말려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건축술이 어우러진 곳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고래등 고택에서 전통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의성 사촌 전통마을은 사과와 마늘로 이름난 고장답게 마을이 모두 사과밭 안에 들어 있다. 널려있는 사과나무 이랑 따라 즐비하게 피어있는 하얀 민들레들이 그윽한 마을의 정취를 더해 주고 있다. 

점곡면 사촌마을은 안동 김씨, 풍산 류씨들이 대대로 살아오는 유서 깊은 선비 마을이다. 사촌(沙村)마을은 600여년 내력을 지닌 아름다운 숲과 30채에 이르는 옛 한옥들이 즐비하고, 마을 서쪽으로 깊은 그늘을 드리운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천연기념물(405호)로 지정된 ‘사촌리 가로숲’은 사촌마을 주산인 매봉산 자락에서 흘러내려오는 대곡천 물길이 주류이며, 계곡 길 따라 거닐고 싶은 숲이 기천 쪽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가로질러 조성된 숲이라 해서 가로숲이다. 

사촌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3명의 정승이 태어날 형세라고 한다. 신라 때 이미 정승 한 사람이 나왔고, 풍수상 두 번째 정승이 나올 것으로 점쳐지는 해에 류성룡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출가한 모친 안동 김씨가 친정 사촌마을에 와 머물다가 산기를 보였다고 한다. 안동 김씨 가문에선 정승을 사돈댁에 빼앗길 것을 우려해 부인을 시집으로 내쫓았는데, 쫓겨 가다 가로수 숲에서 류성룡을 출산했다고 한다. 서애는 선조 때 영의정에 올라 마을의 두 번째 정승을 차지했다. 주민들은 앞으로 또 한명의 정승이 날 것으로 믿고 있다. 

마을 안내 간판을 보고 골목으로 들자 기와를 얹은 낮고 곧은 흙담이 이어지고, 담 안쪽엔 고래등 같은 한옥들이 가득 차 있다. 90가구 240여명의 주민이 사는 사촌마을엔 만취당, 안동김씨 종택, 류신하 가옥, 류근하 가옥, 후송재 등 한옥이 30여채에 이른다. 한옥들은 저마다 흙벽 담에 둘러싸여 이어지며 길고 긴 토담 길을 만든다. 

만취당 뒷골목 한쪽엔 500년 됐다는 커다란 향나무(일명 만년송도 기념물) 한 그루가 온갖 화마를 이겨내고 서 있다. 조선 중기의 시인 송은 김광수가 심었다고 한다.

마을 앞 기천 점곡2교 건너면 왼쪽 언덕에 그림처럼 앉은 정자 영귀정(문화재자료)이 있어 둘러볼 만하다. 마을에서 볼 때 정면 문필봉의 서쪽 끝자락이다. 영귀정은 1,500년경 송은 김광수가 건립한 정자다. 마을 앞을 흐르는 물줄기 기천의 물은 말랐지만, 물가 언덕 정자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사촌마을 한가운데에 마을의 유래와 볼거리, 특징, 전해오는 유물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사촌마을자료관이 있다. 해설사가 상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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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근 시인· GCS 국제클럽 연구소장·연수원장

입력.편집 :   2017-08-10 21:37   노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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