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봉란
울산경제진흥원 창업일자리팀장

1969년 미 국방성의 군사용 네트워크인 ARPANet에서 유래된 인터넷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로 파급돼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폭발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처음엔 정보를 제공하는 서버 컴퓨터와 정보를 요청하는 클라이언트 컴퓨터로 구성된 서버/클라이언트 모델이 주로 사용됐다. 그러나 최근엔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컴퓨터들이 필요에 따라 서버가 되고 때론 클라이언트가 되어 동등하게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P2P(Peer to Peer) 모델이 더 주목받고 있다. P2P기술은 1999년 음악공유업체 냅스터가 개인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다른 사용자가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한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냅스터는 미국 음반산업협회에서 제기한 저작권법 위반 소송으로 문을 닫게 됐으나, 서버 컴퓨터에 부하가 집중되지 않는 분산시스템 형태의 P2P기술은 효율성에 있어 큰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최근 P2P기술은 스마트폰의 등장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비즈니스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핵심기술로 대두되고 있다. 

첫째, 자원 사용방식을 바꾸는 ‘공유경제’의 출현이다. 개인이 소유한 잉여자원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빌려주는 것인데 전 세계의 수요자와 공급자를 P2P기술로 직접 연결할 수 있어 가능하다. 잉여자원엔 차, 집, 옷, 돈 같은 유형적인 것들로부터 재능, 경험, 시간과 같은 무형적인 것들이 포함된다. 이런 활동을 중개하는 비즈니스를 플랫폼 비즈니스라 하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할 수 있어 기업가치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주택보유자가 자신의 집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주기 위해 활용하는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는 2008년에 창업, 자사 보유 주택 한 채 없이 2015년 12월에 이미 기업가치가 255억 달러가 되었다. 이렇게 필요로 하는 사람과 자원을 나누어 쓰는 플랫폼 비즈니스는 계속 다양화되고 전 세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성장해가는 추세에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일자리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다. 수요에 따라 그때그때 계약하고 일하는 단기 계약근로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경제 형태를 ‘긱 경제(Gig Economy)’라고 한다. ‘긱’이란 말은 1920년대 미국 재즈공연장에서 필요한 연주자를 즉각적으로 섭외해 공연하는 행위에서 유래된 말로서, 현재는 프리랜서 형태로 일이 필요할 때 계약하고 일하는 유연근무 고용형태를 의미한다. 이런 긱 경제를 보는 시각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자유로운 고용형태란 긍정적인 견해와 단기적인 비정규직의 고용형태가 고착화되는 현상으로 보는 부정적인 견해로 양극화되어 있다. 부정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로봇이나 인공지능 등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고용이 줄어드는 시점을 대비한 인간 본연의 가치를 발현하는 일자리에서부터 단순한 일용근로자까지 긱 경제의 큰 물결은 거슬러 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근 P2P기술이 가져온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금융시스템의 혁신이다. 365일,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거래가 가능한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가 올해 처음으로 영업을 개시한데 이어 지난달 27일엔 카카오뱅크가 출범, 사용자 폭주로 시스템이 마비되는 현상에 이르렀다. 인터넷전문은행 또한 수요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하는 P2P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편리함은 기본이고, 고객입장에서 시중은행보다 더 유리한 수수료와 이자체계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가상화폐로 불리는 비트코인도 전 세계의 분산된 컴퓨터의 장부에 암호화해 기록되는 P2P 기반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화폐다. 온라인 대부중개서비스도 종래의 은행 역할을 대체하며 돈이 필요한 사람과 돈을 빌려줄 사람을 직접 연결함으로써 더 좋은 이자조건을 내걸고 있는 금융시스템의 새로운 형태다.

이처럼 수요자와 공급자를 직접 연결하는 P2P기술은, 자원을 활용하는 형태와 일자리의 형태, 그리고 금융시스템 외에도 빠른 속도로 우리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국가나 민족의 벽을 넘어 개인 대 개인이 상호 동등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면 때문이다. ‘정부’, ‘공권력’ 등에 제약받지 않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이런 행동양식은 ‘디지털 아나키스트’라고 할만큼 나름의 사회적 가치를 보유하며 자유롭고 한계가 없다. 따라서 그에 따른 위험이나 손해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이나 조직이 없다는 사실도 명확하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새로운 세상은 이미 우리의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이런 미래 사회의 큰 흐름에 현명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논의하고 후배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동등하고 원하는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더욱 책임을 져야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고, 서로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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