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기자는 느닷없이 촬영장으로 뛰어든 사내의 정체가 궁금했다. 사내가 내민 빛바랜 편지

에서 선명하게 다가오는 내용. 그것은 오기자가 삼년 전부터 추적하던 수수께끼와도 같은 주소였다. 경상남도 울산군 하상면 상방리. 오기자의 시선이 사내가 건네준 편지에서 멈춰버린 그 찰나 사내는 학도가를 읊조리며 사라졌다.

# 긴 호흡을 머금으며 오기자는 박제가 되어버린 역사의 편린에 다가간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 되는가 봅니다. 러시아 중심에서 바라보면 시베리아 보다 더 먼 동토의 끝 사할린 섬. 사할린은 만주, 연해주와 함께 우리 한민족사에 아픔을 간직한 땅입니다. 유즈노 사할린스크 그곳 공동묘지에 무성한 잡초로 가려진 묘비명 울산군 하상면 대방리 출생의 박길복씨의 한 많은 삶을 만난 것은 2017년 8월 이었습니다.”

# 1943년 10월. 길을 가늠할 수 없는 사할린 섬에서 고향땅 울산을 생각하는 최재혁. 울산의 10월과는 너무나 다른 동토의 계절 사할린 섬의 10월. 그는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둔 산짐승처럼 울부짖는다. “내 이름은 박길복. 조선인이다. 내 이름은 박길복. 울산군 하상면이 상방리가 고향이다. 대한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뿐이다. 너희 왜놈들에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 나도 박상진 총사령을 따라 구천에서 너희 왜놈들을 몰아내고 대한독립을 이룰 것이다.” 만주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그리고 사할린 섬까지 끌려온 최재혁은 대한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질 뿐이다.

# “최재혁은 왜 이제야 이 편지를 들고 왔을까?” 오기자는 최재혁이 비수처럼 던지고 간 마지막 언어들을 정리 해본다. “박길복이가 죽어가면서 이걸 고향 땅에 꼭 전해달라고 했디요. 내래 사할린에서 길복이와 헤어졌디요. 기러고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카자흐스탄으로 끌려다니다 잃어버렸는데. 이제야 찾아디요.”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