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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칼럼] 거미줄(정치)에 걸려든 매미(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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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7.09.13 22:30
  • 댓글 0

이슬 먹고 사는 지조의 상징 매미
요즘은 식성 육식으로 바꿨는지
청결·청빈은 인간 소원에 불과

사법 장악 시도하는 정부와 정치
정치 중립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
가는 여름 처량하게 울고있는 매미

 

김병길 주필

아침 바람이 선득하다. 떠났던 가을이 돌아온다. 눈을 감고 손을 내밀어 본다. 가을 마을 어귀까지 들어섰다. 어려운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소년처럼. 울산의 첫 단풍은 10월 중순께 들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가을은 꽃들과 헤어지는 아픔도 견디고 무더위를 건너고, 험한 폭풍우도 뚫고 돌아왔다. 북한 미사일과 핵 위협과 주변 강대국의 으름장이 한창이고 살충제 계란 파동과 정부의 검증 안 된 인사문제가 연일 도마 위에 올라 국민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떠났던 가을은 성큼 돌아왔으나 여름 손님 매미는 아직 떠날 줄 모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 깊은 밤에도 울어댄다. 오동나무는 세월을 가늠하는 나무다. 많은 사람이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을 느낀다. 


‘오동나무 밑을 지나가는데 아이 하나가 다가온다/동그랗게 말아 쥔 아이의 손아귀에서 매미울음 소리가 들린다/ 얘야 그 손/ 풀어/ 매미 놓아주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평생 우는 손으로 살아야 한단다’(‘우는 손’, 유홍준). 7년 동안 유충으로 땅 속에서 지낸 매미는 울음소리로 자신의 일생을 문지른다. 일생이라고 해봐야 열흘 남짓이다. 매미에게 아이는 저승사자다. 시인은 매미를 놓아달라고 점잖게 요청한다. 


고려 때 문장(文章) 이규보의 「방선부(放蟬賦)」라는 글이 있다. 매미가 거미 그물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이를 풀어 날려 주었더니 곁에 있던 사람이 거미와 매미는 똑같은 작은 벌레인데 매미는 살려주고 거미는 굶주리게 하는가 하고 빈정댄 데 대한 변명으로 쓴 글이다.
거미는 성질이 탁하고, 매미는 바탕이 맑다. 배부르려는 욕심은 끝이 없는데 이슬만 먹는 매미가 무슨 욕심이 있겠느냐. 보이지 않는 가는 줄로 속임수를 써 남의 살을 먹는 욕심 많은 더러운 놈이 맑은 놈을 해치니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손가…하는 청빈 찬송의 글이다.


매미는 이슬만 먹고 깨끗이 살며 해가 지면 울음을 멎어 음흉한 계책에 말려들지 않기에 선비의 기상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옛날 벼슬아치들이 양쪽에 매미날개를 단 관을 쓰고 집무했음은 바로 이같은 청빈 고고한 매미의 정신을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서양에서도 매미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이다. 미국 이민 초기에 벤자민 프랭클린이 “매미정신 없이 미국에 뿌리내릴 수 없다” 했는데 새벽 일찍 일어나 부지런하게 일하고 해가 지면 일찍 잠이 드는 근로정신을 매미정신이라 불렀다.


또 이솝 이야기에서 여우가 음흉한 마음을 품고 매미의 노랫소리를 아무리 극찬해도 걸려들지 않았다 해서 빈틈없는 지조와 자존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도 이슬만 먹고 산다는 것이 통념이 돼있었던지 퐁텐의 「우화(寓話)」에서 거미란 놈이 조그마한 하루살이로 매미를 유혹해 그물에 걸리도록 갖은 꾀를 다 부렸으나 말려들지 않음으로써 매미의 지조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데 요즘 매미들에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매미더러 이슬만 먹고 청결과 청빈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들의 소원에 불과하다. 매미는 가로등에 모여드는 하루살이 잡아먹기를 좋아한다. 세상이 쾌락·관능주의로 치닫는데 난들 이슬만 먹을 수는 없다하여, 식성을 육식으로 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국가의 3권 가운데 유일하게 선출직이 아니면서 권한과 임기를 보장받는 게 사법부다. 권력과 금력, 집단의 간섭을 배제하고, 포퓰리즘의 덫에 빠지지 말라는 장치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게 그 상징이다. 만약 법관마저 선거로 뽑으면 선거 패배는 곧 멸망이므로, 선거마다 목숨을 건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사법부에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고 ‘최후의 보루’라고 부르는 이유다.


사법권 독립이 보장돼 있음에도 정치를 법정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어리석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법원 바깥에선 정치적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법장악 인사’도 수상하다. 거미(정치)는 성질이 탁하고 매미(사법)는 본래 바탕이 맑다. 그런데 요즘 매미들은 이슬보다 하루살이 먹기를 좋아한다. 거미줄에 걸려들어 가는 여름을 처량하게 울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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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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