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어도 좋은 게 국수다. 

상심한 사람들은 국숫집에 간다 불려, 국수를 먹는다 울기를 국수처럼 운다 한 가닥 국수의 무게를 다 울어야 먹는 게 끝난다 사랑할 땐 국수가 불어터져도 상관없지만 이별할 땐 불려서 먹는다 국수 대접에 대고 제 얼굴을 보는, 조심히 들어올려진 면발처럼 어깨가 흔들린다 목이 젓가락처럼 긴 사람들, 국수를 좋아한다 국수 같은 사랑을 한다 각각인 젓가락이 국수에 돌돌 말려 하나가 되듯 양념국수를 마는 입들은 입맞춤을 닮았다 멸치국수를 먹다가 애인이 먹는 비빔국수를 매지매지 말기도 하고, 섞어서 먹는다 불거나 말거나 할 말은 사리처럼 길고 바라보는 눈길은 면발처럼 엉켜 있다 막 시작한 사랑은 방금 삶은 면과 같아서 가위를 대야 할 정도의 탄력을 갖는다 국수는 그래서 잔치국수다(라면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사랑이 곱빼기인 사람들은 국숫집에 간다 손가락이 젓가락처럼 긴 사람들, 국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을 때서야 그 빈 그릇이 빛난다

 

◆ 詩이야기 : 기린과 임팔라가 풀을 뜯는 뒷모습은 아름답다. 그 경계에 열심 하는 귀와 주둥이에 돋은 땀, 초식은 아름답다. 똥조차 아름답다. 국수 먹는 사람은 아름답다. 뒷모습이 아름답다. 목이 긴 초식의 인간들! 그곳에 가고 싶다. 가서 순한 국수 한 그릇하고 싶다.
◆ 약력 : 윤관영 시인은 1996년 「문학과 사회」 등단.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 「오후 세 시의 주방편지」. 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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