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주민이 일군 오토밸리로 2공구
지역정치인들 치적기회로 삼지 말길
중요한 가치 만든 북구민 노고 치하

 

김진영 정의당울산시당 위원장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넣는다는 뜻으로 의역하자면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거나 억지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꾀함을 뜻한다. 한 마디로 염치없는 짓이다. 

그런데 이 염치없는 행위가 정치판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근본적으로 정치인들은 항상 재선에 목을 매야 하는 운명이다 보니 잘된 일에 대해서는 마치 고기를 본 하이에나들이 달려들 듯이 다들 ‘자기가 한 일’이라고 내세우기 바쁘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서로 연결된 일인 만큼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할 땐 가끔 같은 정치인으로서 부끄러울 때가 있다. 바로 22일 개통하는 북구 오토밸리로 2공구가 그렇다. 

오토밸리로 2공구는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10년 전에 이미 개통됐어야 할 북구주민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1공구는 2005년, 3공구는 2007년에 이미 완공이 됐고, 2공구는 계획상으로는 2003년이었지만 미개설로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됐었다. 이에 보다 못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발 벗고 나서 공사가 시작된 역사적인 도로다. 그러니까 울산에서는 시민청원운동으로 사업이 시작된 첫 사례인 셈이다. 그래서 북구 주민들에게 이번 오토밸리로 2공구의 개통식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꾸려진 주민대책위에 참여했고 울산시의회 청원 대표의원으로서 그 때를 잠시 회고하자면 때는 박맹우 전 울산시장 시절이었다. 2010년 가을 오토밸리로 2공구 조기착공을 위한 주민청원운동이 막 시작됐다. 주민들의 폭발적인 참여에 힘입어 무려 4만2,920명이 서명에 동참하면서 주민숙원 사업임을 초반부터 입증했다.  

2010년 당시 1·3공구 도로는 이미 완공 돼 기형적으로 운행되고 있었으나 2공구는 거의 방치 수준으로 관심 밖이었다. 이로 인해 상당한 불편과 기업 물류비용 등이 가중되고 있었다. 선거공약에 매번 단골메뉴로 등장할 정도로 북구로선 최우선적으로 시행돼야할 사업이었지만 2공구는 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불편이 극에 달한 농소·신천·매곡 주민들을 필두로 청원서명이 시작됐고, 북구지역 8개동 통장과 주민자치위원들을 중심으로 ‘오토밸리로 2공구 조속추진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급기야는 주민청원활동까지 시작됐고, 2010년 11월 울산시에 청원서가 제출됐다.

통장과 주민자치위원들은 북구지역 시장터와 거리를 돌면서 서명을 벌인 경과가 당시 북구 전체 유권자의 40%가 넘는 4만2,920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울산시의회에 청원서가 제출돼 만장일치로 의회에서 채택, 주민대책위는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지역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하면서 조속한 개통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당시 박맹우 시장을 비롯 관계 공무원들은 35차례나 중앙부처를 방문을 하면서 청원서를 이행하는 노력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방치된 오토밸리 2공구 도로가 이렇게 시작돼 결국 22일 개통하게 된다.

그런데 오토밸리로 2공구 착공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이 없이 자신들이 한 일이라며 내세우기 바쁠 것이다. 하지만 당시 또렷이 기억나는 일 가운데 하나로 주민들이 상경해 울산지역 국회의원들을 만나러 갔지만 직접 나와 반겨준 의원은 한명도 없었다. 담당자만 나와 인사정도 하고 돌아 왔다. 그런데 결과를 두고는 숟가락 들고 나타난다. 아전인수도 유분수지.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토밸리로 2공구는 그만큼 개통이라는 의미 외에 주체 면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바로 주민들이 해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을 통해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 “북구주민 여러분!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작권자 © 울산매일 - 울산최초, 최고의 조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