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석은 놀이·행사로 흥미진진
며느리들 친정으로 휴가 가는날
제사보다 추수와 먹고 즐기는 날

해외여행객 북새통된 황금연휴
억지 가족 명절 갈등·상처 들쑤셔
이대로면 머잖아 사라질 우리 명절

 

김병길 주필

기다리던 추석 대보름달이 모양을 잡아가고 있다. 올해 추석 명절 연휴는 장장 열흘이다. 열흘을 알차게 보낼 계획이 된 사람들은 기대가 크다. 또 어떤 사람은 이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낼지  명절 스트레스를 겪어야 할 것이다. 

연휴가 길어지면 특히 30대의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어난다. 연휴가 4일에서 6일로 늘어났을 때 30대의 해외 여행객은 30.1%가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다. 연휴가 4일에서 5일로 하루만 늘어나도 전체 해외 여행객은 약 18.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 추석 연휴 해외 여행객은 1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 한다. 하루 평균 10만명 규모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여름 휴가철인 지난 7월 말과 8월 초 성수기 때 해외여행객이 하루 최대 8만9,000명이었다. 10월 2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내수를 진작시키겠다는 정부 취지가 무색해졌다.

40∼50대 중장년층은 ‘황금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어도, ‘명절’이 끼면 발목을 잡힌다고 한다. 중장년의 경우 고유의 정서상 차례를 지내거나 고향·친지 방문 때문에 장기 해외여행은 꺼린다는 것이다. 

「동국 세시기」를 보면 추석은 스트레스 받는 명절이 아니다. 흥미진진한 놀이와 행사로 가득하다. 조상 제사상 차리기 보다 추수기에 한 숨 쉬어가며 닭 잡고 술 빚어 마시며 취하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즐기는 날이었다.

명절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모여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서로에게 입힌 상처들을 들쑤시는 행위는 한국에서만 관찰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대표적인 가족 명절로서 영화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는 갈등 요인이다.

한국 명절에는 미국의 가족 명절이 가지고 있는 갈등 요인에 더해서 더 큰 스트레스 촉발 요인이 있다. 의례에 참가하는 가족과 수발을 드는 가족이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명절 준비와 뒤처리까지 꼬박 며칠을 공들이지만 막상 명절 의례는 함께하지 않는다. 이들이 준비한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차례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가족은 따로 있다. 

인류학에서 의례의 중요한 기능은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는 일이다. 함께 먹고 마시면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조금은 각별해진다. 인간의 ‘우리’는 유별나다. 동물들은 대개 혈연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룬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집단이 필요한 극단적으로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막상 집단은 혈연을 넘어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과도 이룬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우리’라는 의식을 유지 하도록 문화행위를 함께한다.

따라서 인간의 의례는 피를 넘어서는 사람들과 이루는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피를 나눈 가족끼리만 지내는 명절이라면 굳이 추석을 쉴 필요가 없다. 21세기의 ‘우리’는 통신 수단과 SNS의 발달로 더더욱 혈연과 지연을 초월한다. 이제 코드가 맞지 않으면 억지로 어울리지 않는다. 페이스북 친구는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어도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의례에 참가하는 가족과 수발을 드는 가족을 계속 구분한다면 머잖아 명절은 사라질 것이다.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를 보면 추석은 며느리가 친정으로 휴가 가는 날이었다. 현대 한국인이 전통 명절에서 갈수록 멀어지는 것은 놀고 즐기자는 진정한 전통이 사라져서다. 차례를 한 층 간소화하고 집 밖에서 축제를 즐기는 시간이 늘어나도록 달라져야 한다.
옛 선비들은 술잔을 다 채우지 않았다. 잔은 40%만 채웠을 때 적당히 취했듯이, 우리 인생도 40%만 채우고 나머지 60%는 자연과 순리에 맡기면 훨씬 행복해 질 것이다.

월석(月夕)이라 불리는 추석. 일 년 중 가장 달빛이 좋은날이다. 올 추석인 10월 4일 저녁에 뜰 달은 아직 완전히 차오르지 못해 왼쪽이 찌그러져 조금 비어있는 형태다. 

매월 음력 15일에 뜨는 보름달은 완전히 둥근달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루 정도 늦거나 이르다. 바쁘게 살다 하늘을 잊고 살던 사람들도 모처럼 보름달 한번 쳐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바쁘게 채우기만 했던 것들, 추석연휴에 조금씩 비우며 즐길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쁜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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