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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칼럼] 장생포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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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실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 승인 2017.09.28 22:30
  • 댓글 0

역대 최장 기간의 황금연휴
먼 해외 관광지 가기보다는
가까운 장생포 둘러봤으면

이춘실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밤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나고 바야흐로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만물이 결실을 맺고 고운 색깔의 낙엽과 단풍은 봄, 여름 쉼 없이 달려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여유와 함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정부가 지난 5일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이번 추석연휴는 지난 9월 30일부터 한글날인 10월 9일까지 열흘에 달하는 역대 최장 기간의 황금연휴가 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연휴기간 중 서유럽 지역의 패키지 상품은 예약이 벌써 끝났고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이 찾는 해외 휴양지도 100%에 가까운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여행이라 하면 설렘을 안고 기차, 비행기, 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해외의 유명한 관광지인 파리의 샹젤리에 거리, 몽마르뜨 언덕,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 등은 누구나 한 번 꼭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곳들이다. 하지만 이런 곳들도 막상 도착해 보면 실망할 때가 있다. 명성에 비해 ‘이 곳이 그 곳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나 일반적인 풍경에 허무해지고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까이 있고, 매일 보는 소중한 것들에 대해 무관심을 보이거나 너무 등한시 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멀리 떠나서 새로운 경험과 체험을 하는 여행도 좋지만 울산에도 시내버스만 타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좋은 곳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장생포도 그 중 하나다. 우리나라 근대 포경산업의 전진기지였고, 한국 근대화의 첫 삽을 뜬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장이 그곳에 있다.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는 언제나 흥망성쇠로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때는 멍멍이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촌이었지만, 포경금지 후 급속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에서 시작돼 이제는 울산의 상징물이 되어버린 고래, 그 고래로 인해 한 때 유명세를 탔으나 이제는 수많은 공장들에 둘러싸인 공단 주변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기억되는 곳이 바로 장생포다. 

그러나 당시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이루기 위해 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 고래문화마을 등 고래문화관광 시설들을 조성했다. 장생포 앞바다의 주인이었던 고래를 주제로 한 이 같은 다양한 시설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장생포 마을 뒷산에 자리한 고래문화마을은 국내 최초의 고래테마 공원으로 2015년 문을 열었다. 고래조각정원, 고래이야길, 소규모 야외공연장, 수생식물원, 중국 요양시와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중국요양 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하다. 국보285호인 반구대암각화의 실물모형을 재현한 고래마당에서는 선사시대와 고래역사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야외학습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공원 정상에 있는 고래조각정원에는 실물크기의 대왕고래, 귀신고래, 범고래 등 다양한 고래 모형이 눈길을 끄고 있다. 특히 과거 장생포를 재현해 놓은 ‘장생포 옛마을’은 고래잡이 전성기 장생포 사람들의 실제 생활상은 물론 당시 생활 소품과 거리 풍경도 그대로 재현해서 지금은 사라진 연탄가게, 사진관 등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이들에게는 호기심으로 다가오는 이색 장소로 자리 잡았다.

얼마 전 문을 연 마을 정상의 5D영상관은 어린이들에게 풍부한 상상력과 모험심을 길러주는 내용으로 부족함이 없다. 5D영상관의 전망대에 오르면 울산의 랜드마크인 울산대교와 함께 울산 3대 주력산업인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의 산업현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현대자동차, 석유화학단지, 미포조선소의 웅장한 모습에서 지금은 힘들지만 울산의 오늘과 내일의 희망을 볼 수 있다. 해안가에 가깝게 살면서 암초가 많은 곳에서 귀신같이 출몰한다 해 부르게 된 귀신고래가 새끼를 낳고서 유유히 유영하던 귀신고래회유해면인 장생포 앞바다의 숨어있는 전망도 보인다. 

설렘을 안고 멀리 떠난 외국여행도 며칠이 지나면 우리 음식이, 환경이, 일상이 그리워지고 빨리 돌아가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이번 추석은 긴 연휴를 핑계로 멀리 가는 것도 좋지만 가까이 있는 우리의 숨은 장생포를, 그것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볼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온 가족이 함께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 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고래와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발점인 장생포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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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실 고래문화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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