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명절 처가부터 방문 
女의 시댁 기피이유 알게돼 
양가 모두 소홀히 하지말자

 

신호현 시인

올해부터 명절에는 처가로 먼저 가기로 했다. 그동안 친가에 먼저 가느라 아내의 불만을 무시했던 기억도 미안했지만 가족회의 시간에 아들과 딸들의 요청도 있었다. 아이들은 결혼이나 장례시에 친가 친척들은 어느 정도 알겠는데 처가 친척들은 잘 몰라 당황하기도 하지만 요즘 남녀 평등한 시대에 아빠가 엄마를 배려해 드리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친가에서 제사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주관하는 맏이가 아닌 막내이고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드리지 않기에 아이들의 요청에 큰댁에서 양해를 구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맏이란 이유로 특별히 더 받은 재산도 없는데 제사를 모셔야 하는 큰형님 내외께 그동안 진행돼온 관행에 반기를 드는 요청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1주일 전에 방문,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어 요청을 드렸더니 다행히 승낙해 주셨다.

처가가 다행히 서울이라 아침에 시골로 내려가는 대신 처가로 갔다. 아내와 처남댁이 집에서 요리를 처남은 청소를 했다. 장모님을 모시고 전통시장에 가서 차례상 장을 봤다. 장모님은 오랜 친구 같은 단골로 나를 안내해서는 덤을 듬뿍 얻어오는 쾌거를 보이셨다. 

집에서 점심이 준비 되지 않아 점심을 사서 포장해 갔다. 점심을 먹고 각종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오랜만에 만난 형제자매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추석에는 송편 빚기가, 설에는 만두 만들기가 꽃이었는데 요새는 떡을 떡집에서 사고, 만두는 제사상에 올릴 만큼만 살짝 만드는 경우가 많아 전 부치는 일이 명절 음식의 꽃이 된 듯 하다. 전의 종류에는 명태전, 두부전, 꼬치전, 버섯전, 동그랑땡 등 종류도 다양하다. 두어 시간 전을 부치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쑤신다. 

에고, 친가에 가면 조카가 전을 부치고 필자는 형님들과 파손된 제사상 음식을 미리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울 텐데….

전을 다 부치고 밤을 깠다. 밤도 예전에는 겉껍질 속껍질을 까느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이 아팠는데 가게에서 밤을 사면서 겉껍질을 벗겨주니 쉽게 깔 수 있었다. 예쁘게 잘 깐 것은 내일 제사상에 올리고 나머지는 약식에 넣었다. 찹쌀을 된밥으로 쪄서 약식에 넣는 재료를 뿌려 비볐다. 찰밥을 찌다가 불이 약해 밥솥에 옮겨 하느라 밥이 질고 아래는 타서 약식의 제맛을 살리지 못했다. 필자는 밥을 떠주고 재료를 더 넣으라고 해서 넣고 버무려 주기만 했는데도 장모님의 면박을 들어야 했다.

아하! 여자들이 시댁에 가는 것을 싫어하고 명절이 되면 고통을 호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댁에 가면 첫째, 꼬질꼬질한 때가 끼인 식기와 냉장고 등 요리를 하기에 앞서 청소를 하면서 해야 하는 고통이다. 둘째, 식기와 음식 재료들이 어디에 있는지 낯설어 물어보고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셋째, 내 식구들의 입맛에 맞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 친척들의 표준화된 입맛에 맞춰야 하는 어려움이다. 넷째, 여럿의 음식을 만들다 보니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고 많이 하다 보니 제맛을 낼 수 없어 면박을 받기 일쑤다.

저녁은 약식의 누룽지로 대충 때우고 과일에 차를 마시고는 아내가 형제자매들이랑 회포를 다 풀 때까지 TV를 보면서 기다렸다. 처남들이 서둘러 내려가라는 성화에 아내는 가방을 들고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탔다. 저녁 늦은 시간에 시골 친가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친가는 한 시간이면 닿는 가까운 곳이라 8시 반에 도착했다. 

친가는 예전엔 북적북적했는데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두 형님도 돌아가셔서 큰형님 내외와 조카 내외만 있어 썰렁했다. 그래도 아버지 같은 형님과 어머니 같은 형수님이 반겨주셨다. 차례음식은 이미 형님내외가 조카내외랑 다 만들어 정리한 상태라 깔끔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형제자매들과 큰소리로 떠들던 아내는 시댁에서 정숙해졌다. 나이 오십을 넘겼는데도 사위는 처가에서 조용하고 아내는 친가에서 조신한 모습이 역력했다. 다음 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고 서둘러 서울 처가로 가지 않고, 여동생 가족과 조카들과 함께 반갑게 놀다가 저녁 늦게야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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