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에게 상처 된 5·18 광주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너희­­들 
시간 흘러도 여전히 마음 아픈 존재

 

김석봉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P군 잘 지내는지? 그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 사이 계절이 두 번째로 바뀌었단다. 여름의 그 뜨겁던 햇볕은 곡식을 알맞게 익혀 우리 앞에 내 놓고, 바다는 바다대로 계절에 맞는 생선들을 내어 주고 있단다. 매주 서울을 왕복하다 보니 누렇게 익은 벼가 눈에 띄더구나. 얼마 전에는 추석이었다. 녀석, 추석이라니까 뭔가 생각나지 않던? 그래, 그 이야기야. 말하지 않아도 잘 알 ……. 

그동안 여기서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권력이 바뀌기도 했고, 새롭게 권력을 담당한 사람이 이런 저런 일들을 하기도 했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 새로운 권력의 담당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단다. 그렇게 너무 기대만 하다가 또 뒤통수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과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아무튼 여기는 네가 너무 걱정하거나 근심할 만한 일들은 별로 없으니 근심과 걱정은 거두고 마음 편히 가져도 되니 그렇게 알고 편히 지내렴. 

한 동안 네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걸 보고 ‘이젠 나를 잊었나’하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아니야. 너를 어떻게 잊겠니. 앞으로도 틈 날 때 마다 마음으로는 한 번씩 너에게 편지를 쓸 건데. 네가 어디에 있는지만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의 상태일 때 훌쩍 그 곳으로 가서 소주 한잔 앞에 두고 네 이름을 부르면서 마음껏 울 수라도 있을 텐데 말이야.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할까? 10월도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 되니 이런 저럼 생각이 참 많이 든단다. 얼마 전에는 국문과 학생들과 함께 답사를 다녀왔지. 전라도 지방으로 말이야. 그리고 광주 5·18 묘역에도 다녀왔단다. 거기서 80년 당시 광주의 상황을 기록한 필름도 보았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 같이 간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할 따름이지. 금년 5월 18일에는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 하고 광주를 기억 하더구나. 그 반면에 여전히 광주를 폭도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말이야. 그런데 그 무덤들에는 이름 없는 비석들 아니면 사체 없는 무덤들이 꽤 많이 서 있더라는 거지. 두 가지 경우 모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씻기 힘든 상처로 남아있을 무덤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한 동안 떠나지 않더군. 견디기 힘들더구나. 특히 너를 생각하면 더 그렇더구나. 

돌아와서 학생들하고 다른 문제로 많은 이야기를 했단다. 그들의 삶의 문제, 쉽게 말해서 졸업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하는 문제로 말이지. 참 답이 없더군. 그들에게 이야기할 것을 강요하는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그런데 정작 이야기를 풀어내는 당사자들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이야기하더라는 거지. 그 친구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설정이 있었던 거지. 그 친구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니. 침묵한 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구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문제는 거기 있는 거지. 네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것 말이야. 조금 움직일 생각은 없는 거니. 네 어머니를 생각해 보렴. 그분이 그 날 이후 지금까지 흘린 눈물을 생각해 보렴. 네 친구를 생각해 보렴. 그들이 너를 생각하면서 지금도 내 뱉고 있을 한 숨을 생각해 보렴. 이름만으로 너를 알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렴. 

이제 10월이야. 금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이제는 그만 돌아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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