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연마 수단 넘어 일상에 스며든 오늘날의 미술
취미 생활로 즐기는 아마추어 화가 늘어나는 추세
자연과 화랑에서 그림 만끽하며 자신과의 조우를

 

 

임 석시인·작가들의 숲 대표

우리의 현실에서 그림이나 조각을 감상하면서 삶을 즐긴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럴 만한 여건이 갖춰지려면 제반 생활 여건이 더욱 나아져야 하지만 그 보다 주목해야할 점은 우리의 문화의식을 좀 먹는 저급한 오락산업이 우리의 생활환경을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이지만 오늘날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스마트 폰을 통해서 얼마든지 미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단순히 본다고 해서 그 뜻을 이해하며 또 그 미감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인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비지식을 갖추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미술이 반드시 교양을 연마하는 수단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늘날의 전위미술이 말해주고 있다. 미술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올 수도 있고 또 그것과 관객이 하나가 되어 즐길 수도 있다. 현대 미술가들이 미술에서 일상성의 의미를 강조하고, 그들의 창작행위를 거리나 공원, 이벤트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고 자신의 캔버스 속으로 관중을 불러 즉흥적 연출을 시도하기도 한다. 

대형공장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면 될수록 여가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도 증대된다. 그래서 주말이나 이번 추석 연휴 때 낚시나, 골프도 좋지만, 간단한 화구를 챙겨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은 스케치북이나 연필과 같은 간단한 도구만이라도 가능하고, 수채물감이나 이젤을 준비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캔버스와 유화물감을 사용해도 좋다. 물론 이런 절차를 밟는 동안 아마추어의 경지를 넘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실로 즐기자면 아마추어를 고수하는 전략이 좋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게 불며 고민도 많아지는 법이다. 좋은 풍경 앞에 즐거운 마음으로 이젤을 세워 놓고 자연을 마치 어린아이를 품에 안듯이 감싸 안을 수만 있다면 그 행위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는 것도 좋지만 ‘본다’는 기초 행위만으로도 미의 궁전에 다가섰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밤별이 반짝반짝 촛불을 밝힙니다/촛농이 흘러내려 밀밭을 익게 하고/고흐는 물감을 풀어 화폭 가득 담습니다.//나직이 다가가는 성당의 종소리에/낙엽 비 조잘조잘 새떼처럼 날아올라/묘지석 없는 무덤을 포근하게 감삽니다.>(시 ‘오베르 마을’ 전문)

이제 대한민국에도 아마추어 문인이나, 화가들이 많이 늘어났다. 개별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그룹을 만들어서 주말마다 함께 문학기행 또는 스케치 여행을 다니는 것을 많이 보기도 한다. 이렇게 그룹을 만들어 활동한다면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용이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야외로 나가는 일을 번거롭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서점, 화랑가를 산책한다거나 미술관을 다니는 것으로 차선책을 삼을 수 있다. 화랑이나 미술관을 방문해 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상공간과는 다른 환경에서 그림이나 조각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 느낌은 잠시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이런 효과는 그림에 대한 친화력을 증진시키고 정신 순화에 일조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평가들 가운데는 그림은 더 이상 유익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현대 미술이 더 이상 고전시대의 소설이나 연극처럼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바로 이 점이 미술이 현대인의 여가생활을 위해 의미 있는 기능을 한다고 주장하게 되는 까닭이다. 

사람들의 머리 속에 무언가를 넣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버리라고 교시하기 때문이다. 현대 회화나 조각이 설명적인 내용을 거부하고 추상으로 나갔던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추상회화는 말하는 그림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그림이며, 그 비가시적인 침묵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고 화가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거공간이 물질이나 물건 말고도 싫건 좋건 쓸데없는 소리와 잡음들로 일상을 가득 메우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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