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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에세이 칼럼] 축제 걸신(乞神)들린 우리들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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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길 주필
  • 승인 2017.10.18 22:30
  • 댓글 0

지자체 경쟁적으로 몰아치는 가을축제
시민 참여하든 말든 연일 보여주기 경쟁
이제 계절별로 일정 다듬고 실속 갖춰야

점점 더 긴 여름·겨울 사이 낀 짧은 가을
홀로 나뭇잎 떠나보내는 나무들 처럼
제각각 소중한 사색 시간 가져야 할 계절

 

김병길 주필

아찔하게 내리쬐던 땡볕이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해졌다. 구름 한 점 없는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바람결도 선선하다.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은빛 억새가 일렁이는 가을 산하. 뿐만 아니라 노을빛에 물든 몽환적인 분홍 억새까지 손짓하고 있다. 


억새는 서늘하게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자신의 몸줄기를 흔든다. 금빛 바다에 부서지듯 일렁이는 하얀 파도, 수려한 한 폭의 가을 풍경이다. 넓게 집단을 이뤄 살고 있는 억새는 인간 군상과도 많이 닮았다.
하늘을 향해 꼿꼿이 머리를 세웠다가 시간이 지나면 벼처럼 고개를 점점 숙이며 은빛으로 변한다. 이때는 줄기도 황토빛으로 말라 하얀 꽃이 더욱 쓸쓸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독 안에 든 게처럼 서로 끌어 내리기에 바쁘고 세상은 초스피드로 변하고 있다. 속도만 쫓다보면 가족도 친지도 잃고 홀로 남는다.


환경 변화로 사계절에 양적 균형이 사라지고 있다. 봄과 가을은 점점 더 긴 여름과 긴 겨울 사이에 끼인 ‘틈새 계절’이 됐다. 그래서 짧아진 가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최근 10년간 9~10월 평균 기온은 1990년대에 비해 0.7~0.8도 올라갔다. 산 전체의 80%가 물드는 단풍 절정 시기도 늦춰지고 있다. 1990년대와 견주면 설악산은 이틀, 내장산은 나흘, 지리산은 닷새쯤 단풍이 더디온다는 얘기다.


‘가을이라 그런지 자꾸 배고프다’는 소리도 자주 들린다. 왜 가을에 식욕이 부쩍 늘어날까.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포만중추가 자극되는 온도까지 도달하기 위해 먹는 양을 늘리게 되기 때문이란다. 겨울이 되면 식욕은 더 늘어난다.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도 한 몫 한다.


곤충들의 작은 변화로도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 짙어짐을 알리는 곤충이 매미라면, 가을을 알리는 곤충은 귀뚜라미가 아닐까. ‘귀뚜라미는 가난한 사람의 온도계’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귀뚜라미 울음 소리를 바탕으로 주변 온도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나라의 안위가 걱정된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 진다’는 민심에다 최근 국내외 뉴스는 대부분 무거운 내용이다. 주민이 굶어 죽더라도 핵폭탄을 껴안고 끝까지 가겠다는 북한의 ‘너죽고 나죽자’는 억지가 두렵다.


‘사람 사는 집보다 빈 집이 더 많았다. 밤이면 불 켜진 집이 없어 사방이 캄캄했다.’ 일본 훗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시. 2007년 일본 지방자치단체 사상 처음 파산한 곳이다.

시가지 곳곳에 ‘007 닥터노’ ‘황야의 7인’ 같은 수십 년 전 할리우드 영화 입간판들이 보인다. 파산 직전 16년 동안 유바리를 관광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유바리시가 해마다 개최하던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흔적이다. 철거 비용이 없어 10년이 넘도록 버려져 있다. 


재정파탄 10주년을 맞은 유바리시가 최근 다시 일본에서 화제다. 장기 불황과 고령화라는 현실에 눈감고 무리한 관광객 유치를 이유로 선심성 축제를 무리하게 벌여 수백억엔의 빚을 지고 파산을 선언했다. 


석탄산업 몰락으로 관광도시가 되겠다고 나선 탄광도시. 사람을 끌어들이려면 볼거리·놀거리를 계속 만들어야 했다. 작은 도시가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가을도 연일 축제로 날밤을 세우고 있다. 우리들의 가을은 언제부터인가 축제 걸신(乞神)이 들었다.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벌어지는 보여주기식 가을 축제. 시민이 참여하든 안하든 연일 곳곳에서 몰아치기로 열리니 가을이 몸살을 앓는다. 왜 축제는 가을에 열려야 하나.  이제는 일정을 계절별로 다듬고 변신해야 된다. 


나홀로 사색의 시간을 가질 때가 됐다.


‘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시 ‘가을의 기도(김현승)’는 ‘홀로 있기’를 부탁하고 있다.


나무들도 홀로 있기 위해 나뭇잎들을 떠나보내고 있다. 낙엽은 나목의 고통을 위한 자연의 배려이다. 긴 휴식에 들어갈 나목은 중력을 내면으로 잔뜩 모으고, 태양에도 무심할 수 있는 절대고독으로 몰입한다. 인간이 자연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흉내는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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