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7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며칠 전 사정당국 관계자를 만났더니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망명'을 도모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말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되든 안되든 '정치범 개념'을 가져 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참으로 황당한 관측이었다. 전직 대통령이고 본인의 책임과 죄를 인정하지 않은 채 '뻔뻔함'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설마 그런 분이 정치적 망명을 도모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기자회견 3번, 그리고 정규재 TV에서일관되게 '나는 아무 죄가 없고 모두 배신한 최순실 탓'이라며 반복적으로 판을 흔들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78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노컷뉴스 자료사진)

일반적으로 뻔뻔하거나 파렴치한 속성을 가진 사람들은 도피나 자살 등의 극단적 행위를 여간해선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정치적 망명설'은 '천지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삶의 원리를 각성하면서 하나의 추측으로 여기고 기억 속에 묻어 두었다.


그러나 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재판서 "추가 구속영장 발부가 정치보복"이라며 "재판부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사실상 재판 보이콧 선언을 한 것이다.

증거 위주의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정치 보복'을 운운하며 재판결과 불복을 시사한 것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고 법치주의 원칙을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역설적이지만 박 전 대통령은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가장 많이 운운한 정치인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다.

솔직히 이 발언을 듣고도 '정치적 망명'까지는 '설마'라고 생각 했다. 다만 '자연범·파렴치범'에 불과한 피고인이 자신을 '정치범'으로 '개념화'하기 시작했다는 판단은 했다. 
 

(사진=CNN 홈페이지 캡처)

그런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CNN 보도가 터져 나왔다. MH그룹이라는 국제법무회사가 만든 '박 전 대통령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 초안'을 토대로 한 보도였다.

박 전 대통령이 '더럽고 차가운 감방에서 지내고 있으며 계속 불이 켜져 있어 잠들 수 없고 그래서 만성질환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골자이다. 

박 전 대통령 주변에서 '국제법무회사'를 통해 '정치적 망명'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강력하게 추정케 하는 보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도모를 하고 있다는 의심은 지우기 힘들다.

정치적 망명이나 정치범 개념은 국제적으로 매우 모호하다. 여러가지 '학설'이 혼재할 뿐 일치된 견해가 없다. 박 전 대통령측은 이러한 모호한 개념을 악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외국 기관들은 국내와 달리 국정농단 사건을 피상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활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장점이 있다.

그들 견해대로라면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박해'라는 말을 자꾸 입으로 들고 나와야 한다. 억지여도 박 전 대통령을 '정치범 범주'에 끼워 넣으려면 자꾸 테두리를 씌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인권침해'는 아주 적절하고도 강력한 도구일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내에서 낯을 들고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했다. 설사 사생활을 한다해도 감옥살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욱이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씨에게 종속적인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최씨를 '배신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남은 인생에서 최씨의 조력이나 '케어'를 기대할 수 없다. 어찌보면 한국에서 살 이유가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CNN에 인권문제를 어떤 계기로 제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돌파구는 그것 밖에 없다"며 "평생 의지해 온 존재가 없어졌다고 판단했을때는 여기서 버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망명'을 도모한다는 증거나 주변 인사들의 전언은 없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주변 인사가 외국의 법률회사를 접촉하며 '정치적 망명'의 시동을 걸었을 가능성을 완전 부인하기도 어렵다. CNN보도를 '아니땐 굴뚝의 연기'라고 치부하기가 영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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