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나무가 은행나무다. 은행나무는 자웅이주(雌雄異株)여서 암 수 나무가 교접을 가질 수 없어 서로 사랑하면서도 만나지 못해 애태우는 남녀 연인을 연상케 한다.
은행나무의 굵고 곧게 뻗어올라가는 그 세찬 줄기. 이른 봄 자질구레한 식물들의 봄 잔치가 거의 파장에 이를 때, 깊은 겨울잠의 눈을 비비는 은행나무의 대인지풍(大人之風)이 의젓하다.

은행나무의 특징은 잎새다. 그 숱 많고 두껍고 짙푸른 잎새는 여름내 우리 마음에 샘물을 퍼부어 준다. 불나방 따위의 지저분한 벌레가 덤비지 못하므로 드리워진 그늘도 언제나 깨끗하다.
특히 가을의 샛노랗게 물든 단풍이 맑고 깨끗하다. 늦가을이면 엷은 금조각 같은 잎들이 온통 땅을 뒤덮어 장관을 이룬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가로수가 홍역을 치른다. 암나무에만 열리는 은행이 길에 떨어져 악취를 풍긴다는 민원때문이다. 지자체들은 낙과 전에 은행 열매를 채취하느라 분주하다. 

최근 국립산림과학원에는 은행나무 묘목의 암·수나무 성감별 주문이 폭주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20~30년이 지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봐야 암나무인지 수나무인지 알 수 있다. 묘목에서 골라 심으려면 DNA 성감별이 필요하다. 산림과학원은 은행잎 한 잎으로 성을 감별하는 DNA 분석법을 2011년에 개발했다.

가로수 중 암 수 딴그루는 은행나무 뿐이다. 노란 은행잎은 가을의 상징이지만 암나무는 이제 천덕꾸러기 신세다. 성차별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은행 열매에서 나오는 구린내는 자연의 냄새인데 세금 걷어 엉뚱한 데 쓰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인위적으로 암 수 비율을 조정하면 문제는 없을까. 자연에 분포하는 나무의 성비를 바꾸면 문제가 되겠지만 가로수는 필요에 따라 심는 나무이다. 암나무라고 뽑혀나가 인적 드문 곳으로 옮겨지는 건 쓸쓸한 일이다. 100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득 수준이 좀 높아지면서 더욱 간사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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