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소년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여행’
때론 준비과정 자체가 행복의 순간으로 다가오고
감동·설렘은 한 편의 詩로 남아 소중히 간직돼

 

 

이강하 시인

여행이라는 말은 얼마나 희망적이고 신선한가. 미국의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은 여행을 할 때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는 다섯 살짜리 소년처럼 특별한 상상력과 모험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다섯 살짜리 마음을 가지고 지독히 사랑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먼 태고의 이야기, 아버지의 나라를 모두 섭렵하고 싶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빌 브라이슨처럼 다섯 살짜리 소년의 마음으로 여행 했을 때가 종종 있지 않았을까? 

나 역시도 중요한 여행을 계획한 달이면 다섯 살짜리 아이 마음이다. 몇 주 전부터 어떤 옷을 입고 갈까. 어떤 신발을 신고 갈까. 자전거를 가지고 갈까. 아니면 기차로 갈까. 어떤 책을 가방에 넣고 갈까. 숙소는 어떤 쪽을 선택할까. 숲이 우거진 곳으로 할까. 아니면 바닷가가 좋을까. 그곳의 문화는 어떤 형태로 나에게 다가올까. 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 내내 들뜬 기분인 것이다. 여행 목적지와 주변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느라 분주하다. 

일을 하다가도 잠깐 시간이 날 때면 여행 목적지 주변이 궁금해진다. 어린 왕자가 된다. 
자료 수집을 하다가 특별한 이야기를 발견할 때는 짜릿한 감동을 받는다. 그 감동은 어느 순간 더 큰 감동으로 돌변해 한 편의 시가 남겨지기도 한다.  이렇듯 여행 전 준비 시간이 행복한 순간일 때도 있다.

여행을 가기 전 준비된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없는 설렘과 용기를 가져다주는 고귀한 첫 장의 꽃잎을 펼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아래에 있는 시(詩)는 내가 태어난 경남 하동과 성장지였던 전남 구례를 다녀와서 쓴 시다. 화개장터에 도착하면 유난히 유리창에 성에가 많이 낀 허름한 국밥집이 있었다. 그 국밥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었던 얼큰한 콩나물국밥이 생각난다. 아버지께서 직접 화개장에서 사주신 빨간 버버리장갑을 끼고 동그라미를 수없이 그렸던 그 겨울의 창을 잊을 수 없다. 

쌍계사를 거슬러 오르다보면 수령 70년 된  벚나무들이 반긴다. 그 사이를 천천히 통과하노라면 일곱 살 무렵 어머니와 함께 했던 봄과 여름 사이가 되살아난다. 화개천 큰 바위 틈에서 솟아오른 약수에 몸을 씻었던 어머니와의 하루가 박하 향기처럼 싸하게 다가온다. 그 때 이후로도 계속 어머니는 버스를 타기 전 박하사탕을 드셨다. 

구례는 고교 때까지 성장했던 곳이다. 그 시절 자주 갔던 곳은 화엄사와 연곡사 그리고 섬진강이다. 첨벙거리는 발소리에 놀란 은어 떼가 꽃잎 날리듯 사방으로 흩어지곤 했다. 학생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이 그립고 함께 치달리던 마을 구석구석이 파노라마처럼 돌아간다. “은어처럼 민첩했던 나의 벗들이여, 잘들 지내고 계시는가? 어디에 있든 매일매일 건강하기를 바라오.” 처음 홀로 떠난 나의 여행이 수십 높이로 날고 있는 도요새의 여정 같아 뿌듯한 날이었다.  

 
‘자전거 타고 달리는 소년과 소녀/이마 위로 바람이 갈라진다/꽃잎 벗어던진 열매들이/자유에 든 것처럼//있고 없음이/필요 없는/자전거 페달의 가벼움은/혈육을 돌리고/친구를 돌리고/아픈  역사를 돌리고, 또/누군가를 절실히 돌리고 싶어한다/접힌 주름 그대로/ 발길 닿는 대로//그저 아무 조건 없이/ 진종일, 나는/섬진강 구석구석을 돌린다/묵상에서 돋아난 신록,/소년들과 소녀들이 자꾸 늘어나는//내일이면 탱자나무도/하하 웃으며 달리기를 시작할 것이다/굽이굽이 덜컹거렸던 우리,/은어 떼는 더 성숙해질 것이다/ 오봉산과 구름이 맞닿는/그 틈과 틈 사이로 장미꽃 번지 듯’(詩 ‘처음 홀로 떠나는 여행- 섬진강’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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