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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리 칼럼] 메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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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중국 울산과학대학교 겸임교수
  • 승인 2017.10.22 22:30
  • 댓글 0

알고 모름을 정확히 아는 것 ‘메타인지’
수동적인 현재 교육으로는 인지 힘들어
학교·가정·사회 모두가 변화 주도해야

 

 

김중국
울산과학대학교 겸임교수

올해도 10월 들어 각 분야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선 수상자가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교육열과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는 학생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에도 별로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아니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짧은 지면에 모든 문제를 언급할 수도 없고 그런 능력도 없다. 다만 필자가 관심을 두고 있으며, 실제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한 부분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하게 말하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무엇인가를 배우고 알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그럼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심리학적인 전문용어에 메타인지라는 것이 있다. 메타인지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인지과정에 대해 생각하면서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즉 자기가 그 무엇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자인 아주대학교 김경일 교수에 의하면, 지식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알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설명을 할 수 없는 지식과 다른 하나는 알고 있다는 느낌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도 가능한 지식으로 나뉠 수 있다고 한다. 

이 중 두 번째 지식이 메타인지인데 우리나라에서 0.1%에 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실제 해당 학생들은 여타 학생들과 기억력과 아이큐는 별 차이가 없지만 메타인지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고 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비교적 잘 알고 있으며, 다른 학생들의 질문에 설명해주는 것을 즐기고 이를 통해 메타인지를 발견하는 경향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메타인지를 이용한 교육이 실생활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민족이 유대인이다. 유대인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첫 질문이 오늘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는지 물어볼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질문하기가 생활화 되어 있다. 

필자는 이스라엘의 도서관 동영상을 보다 너무나 인상이 깊었던 장면이 있었다. 도서관 대부분의 사람들이 둘이 짝을 지어 시끄러울 정도로 토론하는 모습이었는데 우리나라 도서관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들에게 도서관은 조용히 책을 보는 곳이 아니라 관심사를 상대와 토론하는 곳이었다. 그것이 유명한 하브루타라는 유대인들의 독특한 학습법이다. 즉 매 순간 자기의 메타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이다. 유대인 중에서 왜 그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지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오바마대통령과 한국기자란 동영상이 한창 인기를 끌었다. 오마바대통령은 기자회견 말미에 꼭 집어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고 결국 오마마대통령은 아쉬운 표정으로 중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줬다. 우리나라 교육의 적나라한 모습의 한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다.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 갈 정도의 기자 중에 정작 질문할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답만 받아 적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에 답답한 마음을 금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교육자를 비롯한 부모, 정책당국자 등등 우리 모두..

이제 학교현장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학교는 더 이상 정해진 지식전수만을 위한 곳이 아니다. 학교의 주체는 학생이다. 학생들이 주어진 것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학생들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는 곳이 학교여야 한다. 오로지 성적에만 목을 매게 하는 학교는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다. 

가정도 변해야 한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 관계설정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정신·육체적으로 혼란기를 겪는 청소년을 둔 부모가 성적으로 인한 갈등으로 남남보다 못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대할 때 좀 더 행복한 삶의 동행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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