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재개 59.5%, 건설중단 40.5%. 19%라는 예상 밖의 큰 표차.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승인을 취소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이렇듯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471명의 시민참여단 결정에 의해 후퇴하게 됐다. 앞서 문 대통령이 우리나라 1호 원전인 부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 시대’를 선언한 6월 19일, 그리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꾸려진 7월 17일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영구중단이 결정될 것 같던 분위기은 반전으로 결론났다. 하지만 탈핵시민단체들은 공론화위원회 결정과 이를 존중한다는 청와대 발표는 수용하기 어렵다며 앞으로도 신고리 5·6호기를 포함한 탈원전 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동아시아의 대표적 탈원전 국가인 대만은 2000년, 현재 한국과 비슷한 진통을 겪었고, 진통은 17년째 끝나지 않고 있다. 대만의 반핵운동가인 류화젠 국립대만대학 사회학 부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문제를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기로 한데는 합리화의 성격도 있겠지만, 결국은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절차”라고 강조했다. 

 

  영구폐쇄시 2,800억 부채
  대만 전력청도 경영난
  민진당·국민당도 태도 모호

  차이 총통도
  영구폐쇄 공약으로 당선 후
  재무대책 필요 시간 달라며
  포장 잘한 측면 있어

“원전 사회·경제 미래 아냐
  얼마나 큰 용기로 
  대안 선택 하냐가 중요”

 

◆2000년 중단→석달 만에 재개→2014년 중단 

1999년 첫 삽을 뜬 롱먼원전 건설은 이듬해 10월, 반핵을 공약한 민진당 첸수이벤 총통이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건설중단을 선언했다. 

하지만 첸 총통은 3개월 뒤 건설재개를 발표했다. 사정은 이랬다. 건설중단 결정을 내린 뒤 114일간 주식시장이 28%나 하락해 시장가치가 NTD(대만달러) 기준으로 1조2,5000억원 증발했다. 대만전력청도 NTD 1,800억이 넘는 손해를 봤다. 결국 롱먼 원전은 대법원장의 해석과 국회 결의로 재개가 결정됐다. 첸 총통은 집권 8년간 반핵 정책을 펴지 못했고, 민진당은 2008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만다.
 

홍선한 사무처장과 취재진. 홍 처장이 ‘반핵’이라고 적힌 피켓을 펼쳐보이고 있다. 이 피켓은 대만 거리 곳곳에 걸려있다.

이후 정권탈환에 성공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40년인 기존 원전의 수명연장을 결정했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반핵 여론이 거세지자 ‘원전수명은 연장하지 않는 대신 롱먼 원전은 계속 건설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2014년 반핵운동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결국 건설중단을 발표했다. 롱먼 원전 공정률은 98%였다. 

대만 정부의 ‘2025년 원전제로’ 정책에 반대하는 제1야당의 쯔앙리쓰안(국민당) 위원은 “원전 존폐에 대한 사회갈등은 30년간 계속돼 왔고, 그런 갈등의 중심에 선 롱먼 원전은 2014년 건설중단 된 뒤 실드(sealed·봉인)된 상태”라며 “‘실드’란 우리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그냥 두되, 필요할 땐 언제나 또 하나의 선택이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영구폐쇄 공약했지만 이행은 어려워

차잉 총통은 지난해 선거 때 ‘룽먼 원전 영구폐쇄’를 공약했다. 하지만 당선 후엔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왜일까. 

그 이유는 집권 여당인 대만 민진당의 첸만리 위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첸 위원은 취재진과의 서면인터뷰에서 “롱먼 원전을 당장 폐쇄하면 그동안 대만전력청이 투입한 NTD 2,800억이 장부상 부채로 남게 되는데 이 경우 대만전력청은 경영난에 당면할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이미 롱먼 원전의 송배전선이 완공된 상태인 만큼, 다른 방식의 발전소로 전환한다면 낭비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어떤 식으로 전형할 건지는 아직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영구 폐쇄는 당분간 어려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2025 원전제로’와 관련해 “원전제로로 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에너지 전환이 중요하다”면서 “우리 국회에선 재생에너지(전기) 직판매 개방을 골자로 한 ‘전기사업법 개정안(1단계)’이 통과됐고, 6~9년 뒤엔 제2단계 개정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울러 우리는 친환경 단체나 마을단체와도 적극 합작해 100% 재생에너지인 원주민부락을 추진하려 한다”고 소개했다. 

대만의 반핵운동단체인 녹색공민행동연맹 홍선한 사무처장을 만나 롱먼 원전이 건설중단되기까지의 사정에 대해 들어봤다.  

대만의 반핵 운동은 언제 시작됐나?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대만은 1970년대에 본섬에서 75㎞ 떨어진 란위섬으로 핵폐기물을 옮기려 했고(실제 란위섬  핵폐기물 저장시설은 1982년부터 운영 중이다), 그 때부터 원전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롱먼 원전 건설 계획은 1980년대에 수립됐는데, 1986년 체르노빌 사태를 계기로 해외로 유학을 떠난 학자들이 귀국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반핵운동에 불을 지폈다. 

롱먼 원전은 반핵운동 이후 건설된 건가?

▷그렇다. 롱먼 원전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90년 국회에서 건설예산안이 통과됐고, 1999년에 건설공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2000년 5월, 우리와 함께 반핵 운동을 펼친 민진당이 처음으로 선거에서 이겨 집권하게 됐고, 첸수이벤 총통은 공약 실현을 위해 그 해 10월 건설 중단을 발표했다. 

하지만 3개월 후 다시 재개를 결정했고, 대만 탈원전 운동은 정체기를 겪었다. 

좌절감이 컸을 것 같다. 

▷사실 그랬다. 반핵운동 ‘동지’였던 민진당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갔다. 당시 민진당은 국민당에 비해 워낙 소수였기 때문이다. 

첸 총통은 집권 8년 동안 반핵 공약에 대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고, 2008년 선거에서 민진당은 국민당에 패배했다. 

정권을 교체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제1~3원전소의 수명을 원래의 40년보다 20년 더 연장해서 계속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고, 그해 마 총통은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대신, 롱먼 원전은 계속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롱먼 원전이 건설중단된 계기가 있나 

대만의 반핵 운동은 2012년~2014년에 가장 활발히 이뤄졌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롱먼 원전은 2006년 완공됐어야 하는데 비리 문제로 그러지 못했고, 이 때문에 시민들의 관심이 커졌다. 연예인, 학자, 작가가 반핵운동에 동참했고, 파워플해졌다. 2014년 4월에는 단식투쟁이 단행됐고, 집회 신고 없이 도로를 점령하는 시위에 나섰으며,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등 5만 명 규모의 평화시위가 이뤄졌다. 

결국 마잉주 총통은 자신의 임기 동안 롱먼 원전의 건설공사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2025년 원전제로’를 선언하기까지 어떤 역할을 했나

▷민진당 뿐 아니라 국민당 후보들에게도 반핵공약을 요구했다. 

사실 민진당이나 국민당이나, 반핵에 대해선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만, 차이 총통은 탈원전 정책을 잘 ‘포장’한 측면이 있다. 실제 차이 총통은 ‘롱먼 원전 영구폐쇄’를 공약했지만, 당선 후엔 “시간을 달라”고만 한다. 건설에 투입된 3,000억의 예산(2,800억원)과 관련해 재무대책을 마련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만은 탈원전으로 인한 국민 부담이 없나?

▷대만은 원전 2기가 가동을 멈췄지만 전기요금이 내리면 내렸지 오르지 않았다. 전기요금 인상여부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주는 영향이 크지, 반핵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아주 적다.

중요한 건, 원전 역시 폐연료 처리비용까지 계산하면 결코 저렴한 에너지가 아니라는 거다. 롱먼 원전 건설예산도 처음엔 1,700억에서 3,000억까지 늘었다. 핵폐기물 처리비용도 3,000억이라고 했지만 6,000억이 소요된다고 한다.
 
원전을 주장하는 보수파들은 전기요금 인상이나 원전 중단으로 인한 인력난을 거론하며 롱먼 원전의 건설 재개를 주장했지만, 지금 대만은 잘 버티고 있지 않나. 결국 보수파의 주장은 일종의 ‘공갈’이라고 본다. 

원전이 사회나 경제의 미래가 아닌 건 분명하다. 중요한 건 얼마나 큰 용기로 다른 방법을 선택하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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