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애착 확인할 수 있었던 암 수술
‘다학제 진료’ 시스템과 의료 기술에 감동
스스로에 소홀했던 세월 보상 받은 기분

 

 

이병근 시인·GCS 국제클럽 연구소장·연수원장

평소 산에 가는 포스로 40ℓ 배낭에 입원 중 필요한 개인 물품을 챙겨 담고 씩씩하게 입원수속을 마치고 정해진 병실에 입실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을 느낄 겨룰 없었던 것은 간암말기 의심이 간다는 초기진단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크게 놀랄 것 없이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이기로 하고 이왕이면 ‘의연한 죽음’을 준비하자고 맘을 먹었던 터였기 때문이었고, 그래도 검사 해 볼건 다 해 보고 포기하자는 아내의 권유와 삶의 대한 애착의 발로로 각종 검사를 수순에 의해 진행하던 중 마지막인 ‘다학제진료’에 이르렀다. 간 절제술을 해보자는 담당 의사(교수)의 말에 한 가닥 희망의 줄기를 잡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것만으로도 행운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입원 삼일 째 오전 7시. 수술실로 옮겨지면서 잠시 수술실 입구에서 가족의 배웅이 있었다. 아내와 딸이 ‘잘 받고 나오라’는 걱정스러운 말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씩씩한 척 했는데, 순간 코 시울이 뜨거워졌다. 수술실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실 크기와 규모가 좀 보태 표현한다면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것 같았다. 누운 채로 잠시 멀뚱해 있는데 옆에서 어떤 아주머니 환자 한 분이 누운 채로 며느리를 애타게 찾는 소리가 들린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신장을 이식시켜 주는 수술을 하는데 며느리가 안보이니까 염려되어 자꾸 찾는단다. 대단한 미담이 아닌가. 또 얼마나 다행인가. 잠시 시간이 흐르고 어디론가 옮겨지면서 간호사가 주민번호 앞자리와 이름을 물어본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주 멀리 끌려가고 있는 듯 불안하다. 칠흑으로 넓고 깊은 우주에 떠다니는 미아가 되었는가…….

 갑자기 생소한 부처님 얼굴이 형광이 되는데 눈을 뜰 수가 없다. 긴 터널을 지나는 듯 덜컹거린다. 부처님 얼굴이 점점 멀어지는데 도무지 우리나라 부처님상이 아니다. 아까는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 했는데 지금은 그 곳에서 빠져 나오는 느낌이다. 멈췄다. 여기는 또 어딘가? 
“수술이 잘되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싶더니, “고맙습니다.” 아내의 목소리다. 
가느다랗게 눈이 떠진다. 어디론가 옮겨지는 그 틈에도 왜 시간이 궁금했는지. 오후 4시 30분이란다. 수술시간만 꼬박 6시간 30분 걸렸다고. 

남편을 살려 보겠다는 의지로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던 아내도 다리에 물이 차는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다. 서로 자가운전도 할 수 없고, 시내버스로 오고가면서 한 여름 무더위를 견뎌야만 했다. 그런 고생의 대가인지 이제 병동으로 향할 수 있었다. 군대로 치면 훈련소에서 훈련으로 고생하다가 제대할 때까지 지낼 자대에 배치되는 순간과 같다. 

가느다랗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아, 그대와 함께했던/모든 기억을/여기 간직하려한다/사랑의 눈길로/날 바라보는 그대여/지난 날 진흙탕 속에/나를 찾아준다면/그대와 함께 했던/이곳으로 돌아 와/완벽한 위안과 안식을 찾으리라.’ 정해진 병실로 가는 길에 함께 가는 아내의 손을 잡아 보았다. 

그동안 내리막은 없었다. 오직 가풀막 오르는 비탈진 능선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울산대학교병원 의료전문인들이 환자와 함께 앉아 그동안 추적검사의 모든 자료를 영상 모니터로 검토하면서 환자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게 하는 ‘다학제진료’라는 진료 시스템에 놀라웠고, 이런 팀을 구성을 할 수 있는 울산대병원의 선진 의료기술에 또 한 번 놀랄 뿐이다. 평생 사회봉사활동으로 살아오면서, 진작 ‘나’ 자신에 대한 배려는 소홀해 이런 지경에까지 왔는데, 마치 그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는 듯 했다. 그것은 분명 의료진들의 ‘사람 중심적’ 확고한 자세와 숭고 정신 덕분이다. 환자를 우선 배려해 환자가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 보은의 의미를 담아 작은 성의로 “교수님께서 나의 몸속을 보셨으니 이제는 나의 esprit 세계도 보아 주십시오.” 정중히 시집 한권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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