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해오름 동맹의 미래, 유럽서 길을 묻다  (4)폐허에서 일군 기업도시 독일 드레스덴

2차 세계대전 때 도시 90% 폐허
파괴된 문화유산 현대식으로 복원
정체성 상실한 가난한 도시 전락
동·서독 통일로 도심 재건 기회

작센주 정부 파격 기업유치 정책
미국 반도체 기업, 공장 건설 지원
연구기관-대학 협업 제품개발 큰 성과
기업 유입 줄이어 ‘중기 클러스터’ 형성

옛 건축유산 복원 정체성 보존 주력
젬퍼오페라 등 중세 드레스덴 재현
관광객 유치 성공하며 지역경제 활력
1년 내내 문화·예술 축제로 들썩

엘베강 인근의 브륄테라스에 올라서 본 구도심. 고건축물들의 웅장함이 낯선 방문객을 압도한다.

지역 사회와 대학, 연구소 등이 힘을 합쳐 페허에서 기업도시로 다시 살아난 독일의 드레스덴을 찾아가 봤다. 울산, 포항, 경주가 추진중인 ‘동해안 연구개발특구’는 국내 최고의 사업화 역량과 기초연구 인프라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 ‘한국형 드레스덴 클러스터’로 육성할 최적지로 꼽히고 있다.

◆브륄테라스에서 본 장관 ‘압도’

독일 드레스덴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체코의 수도 프라하를 통해서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도 비슷한 거리(180여㎞)에 있지만 직항편이 없는 탓에 인접국을 거쳐 엘베 강변의 고도(古都) 드레스덴을 찾았다.

드레스덴 중앙역에서 북쪽으로 그다지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프라거(Prager) 거리는 구도심으로 향하는 길로 쇼핑센터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그중 알트마르크트 갈레리에(Altmarkt Galerie)백화점은 독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쇼핑센터를 지나면 옛 작센공국의 고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엘베강변에 있는 브륄테라스에 올라 구도심을 보면 고건축물들의 웅장함이 낯선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이 곳은 ‘유럽의 발코니’로 불리는 곳이다.

◆도시 90% 파괴된 뒤 가난한 도시로 전락

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인 1945년 2월 13일 미·영 연합군의 대규모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이로인해 도시의 90%가 파괴됐다.

동독 정부는 파괴된 문화유산 위에 현대식 건물을 지었는데 드레스덴은 그때부터 이도 저도 아닌 난잡한 모양을 갖춘, 정체성을 상실한 변방의 가난한 도시로 전락했다. 산업기반도 취약해 시민의 3분의 1 정도는 실업자였다. 1990년대 드레스덴이 속한 작센주의 1인당 GDP는 1만 달러에 그쳤다. 그랬던 드레스덴이 재건의 기회를 맞이한 것은 1989년 독일이 통일, 동독의 계획경제 체제가 붕괴되면서 부터다.

작센주 정부가 1992년부터 적극적인 부흥책을 펼치며 막스플랑크와 프라운호퍼 등 독일의 주요 연구소를 드레스덴 지역에 집중적으로 설립했는데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막스플랑크-복잡계 물리연구소(MPI-PKS) 피터 폴데 명예 소장(당시 초대 소장)은 “통일이 되기전 드레스덴 지역은 사회주의가 지배하던 곳이었는데 통일이 되자 젊은 인력들과 회사들이 서독으로 옮겨가는 등 혼란스러웠다”며 “구 서독 지역의 우수한 연구인력들도 옮겨 오길 꺼려해 동독 출신 인재들을 재교육시키거나, 새롭게 양성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프라우엔교회앞 광장에 있는 마틴 루터 동상이 인근에 건축되고 있는 현대식 주상복합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통일뒤 ‘드레스덴 시스템’으로 부활 신호탄

오늘날 드레스덴 부흥계획 성공은 기초과학에서 시작해 응용연구소 설립, 기업 유치로 이어지는 ‘드레스덴 시스템’이 있어 가능했다. 

독일 연방정부와 작센주 정부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고 드레스덴의 화려한 부활을 견인했다.
작센주 정부는 1994년 지멘스가 13억 유로를 투자할 때 4억 유로를 지원했고 1995년  미국 반도체 기업인 AMD가 2004년 드레스덴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24억 유로를 투자할 때에도 연방 정부와 주정부는 4억8,000만 유로를 지역개발 촉진 차원에서 지원하는 등 특혜에 가까운 파격적인 기업유치 정책을 펼쳤다.

유수의 연구소들은 설립 뒤 드레스덴 지역 대학과 손을 잡고 창업자들의 제품개발에 적극 지원하고 나섰고 뛰어난 연구성과들이 나오자 관련된 기업들이 앞다퉈 공장과 연구소를 옮겨오는 등 중소기업 클러스터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불과 20여년 만에 일군 선순환 구조다. 

드레스덴 경제발전·진흥청에 따르면 드레스덴 전체 기업의 80%는 중소기업이다.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연구소는 47개에 달하고 드레스덴공대를 포함, 대학이 총 10개 있다. 인구수에 비해 산·학·연의 구성이 돋보인다. 대학교수나 연구원 등 고급 인력 비율이 전체 일자리의 20%에 달한다. 

진흥청 관계자는 “1995년 이후 드레스덴은 고용인구와 기업 매출 모두 높아지고 있다. 2000년 이후 드레스덴시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8%에 이른다. 고용인원의 55%는 하이테크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에 조성된 4개의 클러스터는 이런 계획의 결과물로 첨단연구소와 대학, 첨단기업들이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연구성과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주축을 담당하고 있다. 도시의 경제 성장과 고급 인재 유치를 가져온 모범 사례로 알려져 있다. 유럽내 최고의 반도체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하면서 드레스덴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이름을 빗대 ‘실리콘 작소니(Silicon Saxony)’라고도 불린다. 

◆부흥정책 펼치며 정체성 보존에도 주력

드레스덴의 부흥은 도시의 정체성 보존과 기업생태계 조성이라는 두 부분이 조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드레스덴은 도시재건이 구체화된 2000년에 들어서면서 드레스덴은 새로운 건물을 짓는 대신 버려진 옛 건축유산을 복원하는데 힘을 쏟았다. 2005년말 돔 공사를 마쳐 무려 60년 만에 제 모습을 되찾은 프라우엔교회 복원이 대표적이다. 프라우엔교회 재건축에는 전세계에서 1억1,500만유로의 기부금을 모았다. 1985년 재건한 젬퍼오페라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 중의 하나다. 

이 같은 복원 정책은 번영했던 중세의 드레스덴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성공은 관광객을 불러 모았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꼽히는 슈트리첼마르크트.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서지 않을 때에는 야시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제력 회복에 문화·예술도 되살아나

경제력이 회복되자 예전에 융성했던 문화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금은 1년 내내 문화·예술축제로 도시가 들썩이는 곳이 드레스덴이기도 하다.

이 곳의 딕시랜드페스티벌은 매년 50만 명의 재즈팬이 몰려든다. 딕시랜드페스티벌은 미국 뉴올리언스 축제와 함께 세계적인 재즈 축제로 꼽히고 있다. BRN 페스티벌 기간에는 거리마다 콘서트가 열리고 맥주가 넘쳐나 거리 전체가 파티장이 된다. 매년 11월에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꼽히는 슈트리첼마르크트가 열리기도 한다.

드레스덴 경제개발청 자료에 따르면 드레스덴의 박물관은 52개, 미술관(갤러리)은 40여 개, 오페라하우스·극장은 37개, 도서관은 80개나 된다. 현재 작센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6만5,000달러(약 7,300만원)에 이른다. 

드레스덴의 면적은 328.48㎢로 대전(539.7㎢)의 3분의 2 크기다. 인구는 지난해말을 기준으로 55만3,036명이다. 디르크 힐버트 드레스덴 시장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과 정부가 힘을 합쳐 기초과학부터 응용개발 연구와 신산업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화 구조를 가동한 게 드레스덴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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