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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소리 칼럼] 웃고, 뛰고, 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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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규 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 승인 2017.11.05 22:30
  • 댓글 0

아이들은 어른 행동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
청소년 문제, 생존 본능·모방에서 비롯되기도
연장자로서 벌·혼보다는 본보기 먼저 보여야

 

이진규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청소년의 이해’라는 것은 다람쥐쳇바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동서고금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없던 때가 있었을까? 사회적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 세 가지의 특질을 통해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첫 번째는 웃음이다. 우리는 모두 울면서 태어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긋이 웃음으로써 부모는 물론이고 주위 모든 대상들로부터 감동과 보살핌의 이유를 얻어 낸다. 인간에게, 특히 어린 아이에게 웃음이란 어떤 의미일까? 많은 연구에서 웃음을 생존과 직결해 말하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스스로 자신을 지킬 힘이 부족한 경우 주위의 위험으로부터 공격성을 감소시키고 몸에 면역력을 키우는 등 웃음을 통해 몸 안팎에서 생존의 첫 번째 작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웃음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터져 나올 때가 있고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시끄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춘기에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의 웃음은 남녀의 차이와 기능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주변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와 소속된 사회를 탐색하며 제 역할을 찾아 웃는다. 이 과정에서 모델링을 하는 존재가 어른이다. 어른이 만든 세상을 보며 웃음소리를 키우는 게 아이들이다.


두 번째는 달리기다. 아이들은 넘어져서 다칠 것을 걱정하지 않기에 뛰고 또 뛴다. 어른들은 아기가 기기 시작하면 어서 빨리 걷기를 바라고, 걷기 시작하면 두 팔을 벌려 달려와 안기길 원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일단 뛸 줄 아는 것을 확인한 이후부터는 통제에 들어간다. 넘어지니까, 정신없으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니까 등 다양한 이유가 아이들의 뜀박질을 멈추게 한다. 
‘동물의 왕국’에서 달리기는 삶과 죽음이 걸린 문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단 제 몸 하나쯤 피신시킬 줄 알아야 하는 게 생존의 기본이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 전에 몸이 먼저 만들어 지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인간사회에서는 육체적 기능은 그저 당연시 될 뿐 머리를 써야하는 것에 밀려난다. 학생들의 시간표만 보더라도 체육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처럼 박혀있다. 살아남아야하는 본능이 꿈틀거리는 시기에 몸은 자꾸만 커지고 달리다 지치고 싶은데 그것을 못한다. 쉬는 시간 교실이 난장판이 되는 이유다. 에너지가 넘쳐 아무데서나 터져 나오니 그것을 문제로 바라보는 일이 생기게 된다. 축구라도 신나게 하는 날엔 조용히 지쳐 잠들 것인데 대부분의 부모는 공부하다 지쳐 잠들기를 원한다. 냄새나는 양말을 던져 놓는 것 보다 침을 좀 흘리더라도 책에 엎드려 자는 모습을 더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세 번째는 욕이다. 어느 순간 아이가 욕을 하기 시작한다. 욕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남을 흠잡거나 화를 표현하거나 위험성을 전달하는 등 욕은 의외로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욕이란 나쁜 것이라 배우지만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소년기에 배우는 욕은 웃음과 달리기처럼 생존과 연결된다.  강해보이기 위한 수단도 되지만 보다 조직화된 생존전략이 욕을 통해 나타난다. 또래문화에서 욕은 매우 직관적으로 자신과 서로를 인식시키고 묶어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툭하면 욕을 하게 되고 더 심하게 욕을 하기 위해 욕을 담은 그릇처럼 변해 버린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는 ‘패드립’이라는 것이 있다. 가족을 욕하는 것인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욕정도로는 상대방을 제압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강력한 무기를 생산해 낸 것이다. 이것은 기분 나쁜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자존감을 완전히 말려 없애버리는 지경까지 간다.


왜 이렇게 됐을까? 예전에는 없던 일이 생긴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알려지지 않았거나 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몰래 배운 담배, 욕설, 학교, 집, 입고 있는 옷. 불안함 등 모두 어른들이 준 것들이다. 벌도 마찬가지이고 예방과 치유 또한 어른들이 주게 될 것이다. 웃고 달리는 것처럼 욕을 배운 것도 과정의 하나이기에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어른들이 가르쳐 줘야 한다. 그 가르침의 첫걸음은 본보기이다. 어른들이 화가 가득 차있어선 본보기가 될 수 없다. 기다려 주는 것, 믿어 주는 것, 도와주는 것이 항상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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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규 동구청소년진로지원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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